올여름 나의 백미는 유발 하라리가 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다. 책을 밑줄투성이로 만들면서 특히 다음 문장에 시선이 꽂혔다. ‘정보는 이미 학생들에게 차고 넘친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 조각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 마지막 문장은 관계가 없는 것을 연결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히는 창의·융합, 즉 은유(metaphor)에 대한 예찬이다.
은유를 많이 사용하는 장르는 시(詩)다. 시인은 은유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내 마음은 호수요’에서 마음과 호수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호수란다. 우리는 이 뜻을 이해하기 위하여 자신의 지식체계 내에 각기 다른 영역으로 저장된 ‘마음’과 ‘호수’라는 개념의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그 결과 두 개념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이루어져 내 마음은 넓을 수도 있고, 푸르거나, 깊고, 출렁이는 가능성으로 세상이 확장된다.
한편 은유를 시나 소설 같은 문학에서 사용하는 수사법 정도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세상을 바꾼 스마트폰이 사진기와 전화기 컴퓨터의 결합으로 되어 있듯이 대부분의 위대한 창의·혁신 역시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을 연결한 은유의 산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가운데 가장 탁월한 인간을 ‘은유하는 인간’이라고 했다. 은유하는 인간은 곧 창조하는 인간이다.
40여 년 전 서산 간척지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방조제 길이 6400여 m 중 마지막 남은 중간 부분 270m를 이어 쌓을 수 없어 난관에 부딪혔다. 초속 8m의 무서운 급류는 30t 덤프트럭들이 끊임없이 돌을 나르고 자동차만 한 바위를 넣어도 그 모든 걸 휩쓸어가 버렸다. 학계는 물론 해외 건설사에 컨설팅을 의뢰해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때 ‘배는 띄우는 것이지만 가라앉힐 수도 있다’는 정주영 회장의 쾌도난마(快刀亂麻)로 폭 45m, 높이 27m, 길이 322m의 고철덩어리인 천수만호가 물길을 막았다. 방조제 연결을 위하여 일상적인 ‘흙과 바위’가 아니라 엉뚱한 ‘배’를 이용했다. 현재 주어진 문제의 해결 방법을 이와 연관이 없는 다른 영역에서 가져와 연결했다.
스티브 잡스가 ‘창의·창조는 연결’이라고 했는데 바로 이와 같은 은유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면 은유와 창의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있는가? 최근 비엔나 의대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fMRI)’ 사진을 찍어 분석해보니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뇌의 영역들이 서로 연결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은유에 의하여 창의성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창의성은 전두엽과 같은 고등한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뇌 전체를 두루 연결해야 나타나는 능력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소설 ‘검은 고양이’로 유명한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는 은유 연습을 위하여 사전에서 무작위로 두 단어를 선정하여 그 연결고리를 찾았다고 한다. 독서와 여행도 좋은 방법이다. 과학자의 이성과 시인의 감성이 만나고, 친숙한 나와 낯선 세상이 합쳐져서 마음의 영토를 넓히는 훈련을 해보자.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질적인 것을 함께 가진 다재다능한 인재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남과 똑같은 경험을 먼저 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기고 남이 한 걸 안 하면 불안하다. 남과 다른 경험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고 다르게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질의 융합보다는 이질적인 것의 충돌과 상호 극복이 세상의 판을 바꾸기 때문이다.
‘어느 시골에 한 공장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공장에 취업을 해서 먹고산다. 그러나 이 공장으로 인해 강은 오염되고 생명체들은 죽어간다. 그렇다고 공장을 폐쇄할 수도 없다. 공장이 문을 닫는다면 마을 사람들은 실업자가 된다’. 참 난감한 문제다. 이제 여기서 논리의 세계를 뛰어넘는 직관과 아이디어를 연결하여 탁월한 해결책을 만들어 보자. 그게 은유다. 이 문제에 대한 여러분의 은유는 무엇인가? 궁금하다.
부산영재교육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