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주도 도로에서 일어난 사건 하나가 많은 이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한 차량이 아무런 신호없이 2차선에서 갑자기 차선을 바꿔 1차선으로 끼어 들었다. 이에 1차선을 달리던 운전자는 깜짝 놀라 항의를 했다. 그랬더니 차선을 변경한 운전자는 뒷차량 운전자를 마구 때리고 욕설을 퍼부었다. 심지어 이 모습을 촬영하던 피해자 부인의 휴대전화를 가로채 던지기까지 했다.
이 일이 더욱 국민적 분노를 산 건 피해자 차량 뒷좌석에 있던 어린 자녀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졌기 때문이다. 사건이 터지기 전 두 차량 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경찰 조사가 끝나봐야 알 일. 다만 공개된 영상만을 보면 가해 차량이 방향지시등(깜빡이)을 켜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차선을 변경해 끼어들기를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15만 건에 육박하고 있다.
차를 몰고 도로에 나가 보면 흔하게 보는 게 방향지시등 미점등이다. 해당 차량 운전자 처지에서는 깜빡이를 켜지 않아도 될 만큼 거리를 충분히 확보한 뒤 끼어들기를 했다고 여길 수 있다. 어쩌면 사고만 나지 않으면 되지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런데 이 행동이 뒷차량 운전자에게는 커다란 불편을 준다. 여러 교통 관련 설문조사를 보면 깜빡이를 켜지 않고 불쑥 차선을 바꾸는 차량 때문에 엄청나게 화가 난다는 대답이 늘 다수를 차지한다.
도로교통법에는 차선 변경 때 방향지시등 미점등이나 수신호를 하지 않으면 제재를 받도록 규정되어 있다. 경중에 따라 20만 원 이하 벌금을 내거나 아니면 구류, 과료 등의 처분이 뒤따른다. 하지만 벌금 같은 금전적 손해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깜빡이를 켜지 않는 행위가 난폭·보복운전을 불러오는 주된 요인이라는 점이다.
경찰청이나 지자체들이 주기적으로 깜빡이 켜기 생활화 운동을 전개하지만 쉬 개선되지는 않는 듯하다. 올 상반기만 해도 경찰청에 접수된 교통 관련 공익신고 건수 10만4739건 가운데 방향지시등 미점등 사례는 2만2028건(21%)으로 집계됐다. 교통 전문가들은 진로를 바꿀 때 방향지시등만 제대로 켜도 교통사고 및 보복운전 행위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게다가 깜빡이를 켜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초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 차는 내가 알아서 몬다’며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운전자가 여전하니 참 답답한 노릇일 수밖에.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