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회식을 했다. 직원 한 사람이 퇴사하는 바람에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점심 한 끼하자고 모인 자리. 주인공이 아직 오지 않아서 모인 사람들은 두서없이 이 말 저 말 아무 말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어떤 이야기는 이야기 소재만으로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든다.
제일 먼저 시작된 한 상급자의 정치 이야기. 정치 이야기는 부모 자식이나 부부지간에도 해서는 안 되는 금기 사항이라는데 특히 회식에서 쏟아지는 상급자의 정치적 견해는 반강제적으로 들어야 했던 교장 선생님의 월요일 아침 훈화 같다. 길기도 길고, 쉼표가 없다. 정치 이야기가 밥상에 오르자 분위기 가 사뭇 달아오른다. 맞거니 틀리거니 격한 이야기가 한 바퀴를 돌 무렵 젊은 직원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한마디를 보탠다.
“저…. 죄송합니다만, 저는 생각이 다르지만 드릴 말씀이 없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만 다른 이야기로 소재를 바꿔 주시면 자신 있게 답을 드리겠습니다.”
결코 밉지 않은 정중한 부탁에 좌중에 유쾌한 웃음이 터졌다. 다시 분위기가 정리되면서 화기애애해지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종교 이야기가 시작됐다.
종교 이야기는 힘들다. 나 같은 무신론자에게 종교에 대한 확신과 강력한 신념으로 건네지는 이야기들은 버티기 힘든 인내를 요구한다. 신념에 가득 찬 일방통행식의 종교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종교에 팽팽한 경계심을 갖게 한다. 부담스럽고 불편한 종교이야기가 사라질 무렵, 다행이다 한숨을 몰아쉬는데, 아뿔싸, 이번에는 누군가 반려견을 화제에 올렸다.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는 누군가의 이야기. 보험가입에 기저귀 비용에 미용 비용, 훈련 비용까지 소소히 부담이 크다는 설명이다.
“혹시, 개 유치원 아세요? 제 친구 아파트에는 아침마다 반려견 유치원 차량이 한 바퀴를 돈대요. 엄마들이 애들 손 잡고 유치원 차량 기다렸다가 등원시키는 거랑 똑같은 거죠. 우리 동네도 오면 좋은데 아직 안 오더라고요.”
신기하고 즐겁다는 이쪽의 반응에, 듣고 있던 저쪽이 날을 세운다.
“예? 해도 해도 너무 하네요. 아무리 가족처럼 지낸다고 해도 좀 지나친 거 아닙니까? 요즘 유모차 끌고 다니면 열에 두셋은 반려견 유모차라니까요. 낳으라는 애들은 안 낳고, 왜 네 발로 달려야 하는 개들을 태우고 다니냐고요. 정말 이해가 안 간다니까요.”
펫을 키우느냐 마느냐, 어떻게 키우느냐는 개인적인 선택 사항인데 항상 의견은 팽팽하다. 나와 다른 누군가의 선택은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편견으로 날밤을 새도 부족한 각자의 기호에 대한 토론들이 터져 나온다. 다름을 인정하기 힘드니 옳고 그른 판단이 우선이 되는 현장, 이럴 때는 입을 닫는 것이 상수다.
도대체 회식 주인공은 왜 안 오는 걸까? 불편해진 분위기가 정리될 즈음 이번에는 더 위험천만한 이야기가 오르내린다.
“김 부장님은 왜 결혼을 안 해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아, 이런! 안 된다고 종을 울리고 싶다. 땡땡땡. 이런 이야기 절대 안 되는데.
“저요? 결혼은 선택이잖아요.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 걸 강요해요.”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만! 상대방은 눈치를 못 챈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인구가 줄어드는 거 아닌가요?” 아, 선을 넘어섰다.
“네? 혹시 애 낳으려고 결혼하셨어요?” 반격의 기세 역시 등등하다. 모두들 멋쩍게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분위기는 썰렁해지고 있다.
그 순간, 주인공이 들어섰다. 눈물겹게 고맙다. 그제야 누군가는 불편했을지도 모를 아무 말 대잔치가 막을 내렸다. 그리고 얻은 교훈 한 가지. 회식에서는 결코 정치 이야기하지 말자, 종교 이야기도 안 된다. 반려견 이야기도 심사를 건드릴 수 있다. 결혼? 출산? 취직?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그런데, 그러면 무슨 말을 나눠야 하나? 그냥 회식을 없애야 하나?
부산영어방송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