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누아르로 불리는 범죄 영화가 크게 인기를 끈 시절이 있었다. 군사정권이 폭압적인 통치를 하던 1980년대 중·후반이다. 특히 사회 불만이 많았던 청춘들이 좋아했다. 1986년 만들어진 ‘영웅본색’이 대표적이다. 술을 한잔 걸친 청춘들이 두 손으로 권총을 쏘는 주연 배우 주윤발의 영화 장면을 흉내 내며 “우리에게는 내일이 없다”고 소리치던 기억이 있다.
홍콩 누아르의 인기에는 홍콩과 묘하게 통하는 면이 있었던 우리 사회 분위기가 작용했던 듯하다. 당시 우리 사회에는 물리적인 힘으로 민주와 자유를 억압하던 군사정권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다. 짓눌린 청춘에게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홍콩 누아르는 카타르시스로 작용했을 법하다.
그 시절 홍콩 사회 역시 허무주의가 만연했다. 영국령이던 홍콩의 중국 반환 문제 때문이었다. 1984년 중국 덩샤오핑 주석과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는 홍콩 주권을 1997년 중국에 반환한다고 합의했다. 그 대신 반환 후 50년간 중국은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갖되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이것이 일국 양제다. 우리말로 하면 ‘한 나라 두 제도’쯤 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다른 두 체제를 공존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일국 양제의 합의에도 홍콩주민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100년 넘게 영국 지배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살아온 홍콩인의 사고방식은 중국 대륙인과는 매우 달랐다.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귀속의식이 강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많은 홍콩인은 1949년의 중국 공산화를 피해 대륙에서 망명을 와 반공 의식이 투철했다. 이런 홍콩인의 일국 양제에 대한 불안감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내일이 없다”란 말이 나올 만하다. 자산가 등 상당한 홍콩인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고 이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반환 후 홍콩은 안정을 찾고 일국 양제가 자리를 잡는 듯했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정신이 잘 반영된 ‘신의 한 수’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런 일국 양제가 요즘 최대 위기다.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위가 11주째 이어지고 반중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중국화 강화에 대한 홍콩인의 반발이다. 그렇다고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는 중국이 자율성과 정체성을 가지려는 홍콩을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인민군의 홍콩 시위대 무력 진압설도 나돈다. 이래저래 일국 양제는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어떤 식이든 보완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