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산을 만나면 고개요, 물을 만나면 나루다. 크고 작은 길들은 끊임없이 이어져 산과 물을 연결하고 인간의 삶을 이어준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의 길에 대한 통찰이다. 교통 발달로 고개 아래엔 터널이 뚫리고, 옛 나루터엔 어김없이 다리(bridge)가 놓였다. 터널과 다리는 문명의 훌륭한 이기(利器)지만, 자연생태계에 깊은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뚫려야 할 곳, 놓여야 할 곳을 분별하는 힘, 그것이 문명이라고 고산자는 가르친다. 삶이 지속 가능해지려면 인간의 이로움만 볼 게 아니라 자연환경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낙동강 하구에 지금 첨예한 환경 이슈가 제기돼 있다. 대저대교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다. 대저대교는 부산 사상구 삼락동~강서구 식만동을 잇는 길이 8.2㎞의 왕복 4차로 낙동강 횡단 교량이다. 총공사비가 4000억 원, 오는 2024년 완공 예정이다. 시행사인 부산시는 환경영향평가를 끝내고 막바지 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문제는 대저대교가 관통하는 지역이 낙동강 하구 문화재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179호)으로, 큰고니 등 희귀 철새들의 핵심 서식처란 점이다. 환경단체들은 대저대교의 환경영향평가부터 엉터리라고 주장한다. 하지도 않은 공동조사를 한 것처럼 왜곡 날조하고, 멸종위기종의 분포 위치조차 파악 못 한 상태에서 작성된 부실 보고서라는 것이다. 환경단체 연대체인 ‘낙동강하구지키기전국시민행동’은 엉터리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한 오거돈 부산시장과 환경평가업체 대표를 검찰에 고발하고 농성에 돌입했으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이 문제를 올렸다. 청원자는 “엉터리 환경영향평가가 난개발 수단이 된 현실이 개탄스럽다”면서 정부를 향해 ‘환경영향평가 비용 공탁제’ 등 평가제도 혁신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더 큰 문제는 낙동강 하구에 대형 토목공사가 줄줄이 대기 중이라는 사실이다. 대저대교를 시발로 엄궁·사상대교 건설, 내수면 마리나 사업 등이 계획되어 있다. 서부산 개발을 염두에 두고 1990~2000년대 초 세운 사업들이다. 부산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20여 년 전에 세운 계획들이 여전히 유효하고 타당한지, 문화재 보호구역을 풀 정도로 시급한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사실, 낙동강 하구는 생태관광 명소로 거듭난 순천만보다 더 스펙터클한 생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부산시의 관점은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촛불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생태자원의 가치를 외면한 채 단위 토목사업에 매몰된 모습은 안쓰럽다 못해 짜증이 난다.
대저대교는 국내 최초로 차도와 보도가 분리되는 복층 교량이다. 일반적인 교량처럼 차도 옆에 보도가 설치되지 않고 차도 아래 트러스 구조 내에 전용 보도가 설치된다. 사람을 생각한 진일보한 교량 구조물임은 틀림없다. 부산시는 보행혁신 도시의 상징 교량으로 대저대교를 홍보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아니 그렇기에 더욱 ‘생각 있는’ 개발사업이어야 한다. 졸속 환경영향평가서를 들이밀고 추진할 사업은 더더욱 아니다. 보행도시의 랜드마크가 되려면 입지가 명쾌해야 하고, 절차적 정당성은 물론 시민적 공감대 확보가 먼저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생태 민감 구역을 통과하는 대저대교의 위치를 옮기거나 기존 교량을 확충하는 방안, 지하 터널로 하구 생태를 지키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지역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청와대 게시판에 호소한다는 건 지역의 부끄러움이다. 오 시장은 무엇이 ‘참’이고 옳은 길인지 결단해야 한다.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로 뚫은 길은 결국 엉터리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새들의 조감(鳥瞰)처럼, 낙동강 하구를 크고 넓게, 미래까지 함께 보면 인간과 자연의 공존, 시정의 새 길이 열린다.
고산자의 길에 대한 통찰을 되새겨볼 일이다. 다리는 어디든 놓을 수 있고 없으면 조금 돌아가면 되지만, 한 번 잃어버린 자연은 억만금으로도 다시 살 수 없다.
칼럼니스트·스토리랩 수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