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 보복이 결국 외교안보 문제로까지 번졌다. 우리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전격 선언하면서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줄곧 외교적 해결 등 조심스러운 자세를 유지하던 정부가 예상과는 달리 돌연 강경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청와대 설명은 요컨대 참을 만큼 참았지만, 일본이 국가적 자존심까지 훼손할 정도로 무시로 일관했으며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는 것이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는 모르지만, 우리 정부의 강경 대응은 일본이 자초한 것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가 연장과 종료 사이에서 오래 고민했듯, 정치권 등의 반응은 극과 극을 달린다.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은 청와대 주장처럼 “국익에 근거한 결정”이라고 옹호한 반면 야권은 “국익을 외면했다”고 맹비난한다. 정부의 이번 결정을 두고 누구든 시각을 달리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국익이 이처럼 두 조각으로 쪼개질 수 있는 건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결국 국익을 명분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는 극한대립이 또 한 번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이 와중에 문제의 본질인 일본의 경제 보복은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불똥은 다른 곳으로도 튀었다. 미국이 우리 정부의 결정에 강한 불만을 표명하면서다. 청와대는 당초 “미국은 우리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가 “미국과 긴밀히 협의를 했다”고 말을 바꿨다. 미국의 강한 반발을 볼 때 서로 충분한 협의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그렇다면 한미동맹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측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이들에게 한미 갈등은 한일 갈등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폭발적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게 두 가지로 쪼개진 국익의 본질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문제는 지소미아의 탄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과 일본이 지소미아 체결을 두고 본격 공식 논의를 시작한 건 2011년이다. 문제는 이듬해 6월 이명박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비공개 안건으로 지소미아를 상정해 통과시키면서 불거졌다. 당시 야당과 여론의 거센 반발로 결국 협정 서명이 취소됐다. 이후 미국은 지소미아 체결의 필요성을 우리 정부에 계속 요구했고,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졸속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체결을 강행했다. 그러니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이 지소미아 체결을 강력히 비난했던 건 당연하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대선 후보 시절 “우리가 일본에 주는 정보가 무엇이고, 받는 정보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며 지소미아 재협상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실제 지소미아 체결 이후 한일 간에 주고받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체결 이후 모두 29건의 정보 교류가 이어졌지만,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정보의 양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지소미아는 체결 당시부터 미국이 한·미·일을 자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안에 묶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집권 후 지소미아를 계속 유지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지속되면서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일 터이다. 탄생 과정이야 어떻든, 이처럼 엄중해진 현실을 무시하고 미국과 제대로 협의도 않고 삼각 안보의 한 축을 깨트렸다면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다만, 과연 이번 결정을 두고 국익을 외면했다고 지적하는 게 옳은지는 의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지소미아는 한일 간 필요와 함께 미국의 국익을 위한 측면도 없지 않다. 청와대 설명처럼 지소미아 종료가 우리 국익에 부합할지는 아직 미지수이긴 하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우리와 미국의 국익이 부딪힌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한미동맹이 중요하긴 해도,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금과옥조일 수는 없다.
게다가 미국은 경제 보복에서 비롯된 한일 갈등 과정을 손놓고 지켜보기만 했다. 북핵 협상 또한 자국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면 한순간에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 청와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면서 미국과의 협의와 관련, 애매한 입장을 보인 것은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 하지만 협의 과정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며, 중요한 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불가피한 선택이 우리 국익에 부합한다는 걸 증명하는 일 뿐이다. 지소미아 종료를 부른 일본의 경제 보복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협의 과정에서의 진실이 뭐든, 미국과의 관계 악화도 예상된다. 그 와중에 북한은 또 한 차례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이번 결정이 조국 후보자 파문을 덮기 위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청와대가 이런 안팎의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닐 터이다. 청와대가 강조한 ‘국가적 자존심’을 세워나가는 것은 이제부터다. 무엇이 진정한 국익인지 제대로 보여주길 희망한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