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분명 승자보다는 패자가 훨씬 많지만 패배를 인정하는 건 쉽지 않다. 패배자가 되는 건 어쩌면 죽기보다 싫은 일일 수도 있다. ‘독일의 로댕’으로 불리는 빌헬름 렘브루크는 패배자의 심정을 절묘하게 표현한 조각으로 유명하다. 그의 조각은 대부분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뜨린 깡마른 체구의 좌절하거나 고뇌하는 인간 형상이다. 왜 그런 조각들을 만들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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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헬름 렘브루크의 ‘패배자’(1915~16년). |
1881년 뒤스부르크의 가난한 광부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미술적 재능이 뛰어났다. 14세 때 장학금을 받고 뒤셀도르프 응용미술학교에 입학해 조각을 처음 배웠고, 대학 졸업 후엔 조각의 장식적이고 기능적인 면을 강조한 작품들을 제작했다. 하지만 1910년부터 파리에 4년간 거주하면서 접한 로댕의 조각은 그의 작품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마치 영혼이 있는 것 같은 거장의 조각에서 큰 감명을 받은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의 조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일명 ‘고딕’으로 불리는 그의 표현주의적 양식은 렘브루크를 독일의 로댕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파리 시기 이후 바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위생병으로 참전하게 되고 이때의 경험은 이후 그의 작업세계뿐만 아니라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전쟁 시기의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반전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시기 제작된 ‘패배자’는 그의 가장 대표작 중 하나다. ‘쓰러진 남자’라고도 불리는 이 조각은 깡마른 체구의 벌거벗은 청년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고뇌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제목처럼 패배한 청년의 절규와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의 손에 들고 나가서 싸울 총이나 칼과 같은 어떠한 무기도 없다. 전장이라면 적군의 총탄을 막아줄 방탄조끼는커녕 군복도 걸치고 있지 않은 무방비 상태라 이대로라면 곧 죽임을 당할 게 뻔하다. 이것이 바로 렘브루크가 바라본 당시 독일 청년들의 진짜 초상인 것이다. 국가와 언론이 만든 보무당당한 독일 제국 청년의 모습 이면에 감추어진 진짜 독일 젊은이들의 비애와 고통, 참담한 심정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크기만으로도 충격적이다. 가로길이만 2m40cm로, 실제 모델 사이즈를 훨씬 능가하므로 작품 앞에 서면 완전히 압도당한다. 당시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성찰을 선사한 이 조각으로 렘브루크는 큰 명성을 얻었지만 작가 본인은 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우울증과 열패감에 시달리다가 3년 후인 1919년 베를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나이 38세였다.
이후 나치 정권이 집권하면서 그의 작품들은 ‘퇴폐미술’로 낙인찍혀 수난을 겪어야 했지만, 오늘날 렘브루크는 독일의 가장 중요한 근대 조각가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그가 남긴 작품들은 국가적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그의 고향 뒤스부르크에는 그를 기념하는 미술관이 그의 아들의 설계로 1964년 세워졌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