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후 가마를 멘 중들이 한 곳에 가마를 내려놓으면서 ‘여기가 천일대입니다’ 하기에 눈을 들어 바라보았더니 만천 백옥봉 아래에 붉은 비단폭을 펼쳐놓은 듯 찬란하게 물든 단풍이 눈을 현란시켜 나도 모르는 사이 감탄하여 시를 지었네’. 조선 숙종 때 학자이자 문장가인 김창협이 그의 저서 ‘농암집’에 실은 금강산 유람기 ‘동유기’에 나오는 문신 임규의 이야기다. ‘동유기’를 보면 임규뿐만 아니라 김창협 일행도 가마를 타고 여러 날 금강산의 절경을 탐했다. 주변 사찰의 승려들을 가마꾼으로 부리고 해가 기울면 가까운 사찰을 찾아 음식과 잠자리를 구했으니 금강산 비경을 편안하게 보려 여정 내내 여러 사람을 수고롭게 했다.
무릇 여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travel’의 어원이 고통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travail’에서 온 것처럼 여행은 자연스럽게 고통 또는 불편을 동반한다.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인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이 고통은 시작되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행에서 육체적이든 심리적이든 편안함을 찾는다. 관광 명소의 볼거리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음식이나 잠자리, 교통 등은 최소한의 고통만 감수하면서 편안한 여행을 다니기를 원하는 것이다.
지난달 일본의 수출 규제로 시작한 불매운동이 두 달에 가까워지고 있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열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분야 중 하나가 여행이다. 한국은 일본에 대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여행서비스 수지 적자를 기록했고 더군다나 지난해와 2017년에는 각각 34억 달러와 34억6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였다. ‘(일본에) 가지 않는다’라는 운동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행 인식과 트렌드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면서 올 여름 화두가 된 게 일본에서 발길을 돌린 여행 수요가 국내로 올 것인가였다. 대다수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현실도 그렇다. 오히려 국내 여행지의 불친절과 바가지를 이유로 들며 비판하는 일이 늘었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지난 수년간 그토록 많은 한국인이 일본을 찾은 이유를, 왜 그토록 일본에 빠져 들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설명한 김창협의 동유기를 비롯한 문집을 보면 우리 선조도 금강산이나 두류산(지리산), 개성 같은 명소를 구경하러 다녔다. 하지만 이는 여행 또는 관광의 일반적인 의미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숙소를 비롯한 기본적인 여행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았을뿐더러 여행이라는 건 양반층 같은 일부가 아닌 모든 이의 이동의 자유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여행 인프라와 함께 노동에서 벗어난 여가도 필수다. 일본은 여행에서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오랜 역사를 거치며 탄탄한 인프라를 구축했다. 일본은 19세기 철도망이 정비되면서 여행이 일상화한 유럽보다 100년 정도 앞서 여행이 대중화된 나라다. 이세신궁 참배가 일반화하며 에도시대인 18세기 초에 이미 연간 100만 명이 여행을 다녔고 이런 과정에서 도로와 숙박시설을 비롯한 여행 인프라가 구축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부터 에도(지금의 도쿄)는 문화와 예술 오락 유흥의 중심이었고 오사카는 산해진미 식도락으로 여행객을 끌어들였다. 또 교토는 화려한 유물과 유적이 뿜어내는 역사의 향기가 여행객의 발걸음을 끌어당겼다. 300년에 걸쳐 일본의 인프라와 제도 관습 등은 여행에 최적화됐고 편리한 인프라는 사람들을 여행으로 이끄는 촉진제가 됐다. 우리나라 여행객도 이런 일본 여행 인프라의 ‘맛’을 본 것이다.
반도체 소재나 정밀가공기계 등의 분야에서 일본을 대체한 국내 기술을 확보하려고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일 계획이란다. 그렇게 해도 최소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외국으로 나가려는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까지 국내로 끌어들이려면 지금부터, 멀리 바라보고 일본을 배우고 뛰어넘어야 한다. 일본 관광의 덩치가 커진 비결은 어쩌면 단순하다. 문화적 역사적 명소도 빼놓을 수 없지만 더 중요한 건 ‘정직하고 친절하고 깨끗하다’는 기본이다.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여행문화의 체질을 바꾸려면 꼭 해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