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이탈리아 검찰은 베를루스코니 당시 총리와 그의 아들을 기소했다. 자신이 소유한 언론기업의 돈을 횡령해 주주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세금을 탈루한 혐의였다. 총리가 되면서 민영 방송에 이어 국영·관영 방송까지 장악한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을 주무르는 절대 권력자로 군림했지만, 검찰과 법원이 동거하는 사법부만은 손을 대지 못했다. 정권으로부터 독립한 사법부의 엄정한 법 집행 때문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사법부를 제압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탈리아 검찰의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기민당·기사당 연립정권의 비리를 파헤쳐 무너뜨리는가 하면, 7차례나 총리를 역임했던 전설적 정치인 안드레오티를 구속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검찰이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기소하던 해, 한국 검찰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 사건을 6개월 넘게 수사하고서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검찰은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 등 여권 실세들에 대한 로비 시도 사실을 확인했지만 무혐의 처리하고 말았다. 반면 실제 사법처리 목표를 전 정권에 두고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빙자한 ‘죽은 권력’ 응징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 현대사에 수사기관이 살아 있는 권력을 단죄한 사례는 전무하다.
‘윤석열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그 가족의 비리 의혹에 대한 강제수사에 전격 착수해 살아 있는 권력을 징치하는 첫 사례를 남길지 주목된다. 윤 검찰총장의 앞에는 상반된 두 길이 펼쳐져 있다. 정치적 고려 없이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는 정도(正道)와 종전처럼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에 눈 감는 사도(邪道)다. 꿋꿋이 전자의 길을 걸을 경우 국민이 염원하는 검찰 개혁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게 될 테지만, 후자로 흐를 땐 파행의 세월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압수수색 사실을 청와대에 알리지 않았다는 전언은 전자에 기대를 갖게 하나,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 내부 기류를 생각하면 후자의 가능성이 어른거린다.
“정치적 중립은 법 집행 권한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실천할 때 이루어진다.” 윤 총장이 남긴 취임사의 진정성을 믿는다. 권력자가 아닌 국민의 검찰에 충성하는 그를 보고 싶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