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도서관 인문학 수업을 통해 처음 시각장애인들과 만났다. 세 계절이 지나는 동안 나는 시집과 그림책 낭독 배달과 영화 들려주는 시인으로 가끔 출근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내게 ‘눈 감으면 보이는 감각’에 대해서와, 사물이 내는 몸의 소리에 대해서 말해주고, 점자를 통해 순백의 문장을 백야처럼 보여주곤 했다.
장애를 주제로 그들과 만날 때는, 마주보는 수업 대신 함께 손을 잡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물감을 손에 찍어 지두화(指頭畵) 같은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화분 분갈이를 하며 허브 향을 따뜻한 차로 마시기도 했으며,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을 말하며 우리가 홀로 있을 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경주 계림 뜰에서는 발달장애인 솔방울 축구대회를 벌였고, ‘황리단길’의 그림책방 ‘소소밀밀’에서는 단소 연주자의 연주와 어린 발달장애 친구가 따라 부르기 시작한 ‘오빠생각’ 노래가 만나 모두의 합창을 선보였다. 책방지기의 다시마 세이조 작품 ‘뛰어라 메뚜기’ 그림책 낭독을 듣고선 “우리 이야기네!” 라며 주제의 핵심을 묘파해 내는 탁월한 독자이기도 한 그들은, 모래밭에 물로 그림그리기를 완성하고서도 아쉬워하며 예술여행을 마쳤더랬다.
이후에도 나는 계속 발달장애, 시각장애, 인지장애, 뇌병변장애, 정신장애를 견디고 있는 이들과 만나 시를 쓴다.
장애인들은 어떤 감각은 소멸되어 가지만, 또 어떤 감각은 대단히 증폭되기도 해서, 책 영화 사진 공예 원예 운동 등 여러 현장을 찾아 경험의 기회를 갖는다(장애인 대부분 보행 장애가 있어 수업은 평지 혹은 1층에서 진행된다).
그 자리에 참여하기까지 전쟁같은 아침을 보내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들의 문화 예술 현장 참여가 더욱 눈물겨웠다. 무엇보다 하루 30분가량 2, 3대의 전화기를 동원해 예약을 시도해야 하는 ‘두리발’ 전화 접속에 성공하기 위해 전투적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은 장애인들의 공통된 일과다. 어렵사리 도착해서도 엘리베이터는 비장애인에게 양보하도록 무언의 압력을 받는 것이 장애인들이 겪는 불편한 진실.
전국적으로 알려진 록페스티벌이 집 앞에서 열린다고 해도, 세계적인 흥행 뮤지컬이 부산의 새로운 전용관에서 연일 매진이란 보도에도, 부산국제영화제가 화려한 레드카펫을 펼치고 다양한 시민 영화 커뮤니티를 원도심에 모여들게 한다고 해도, 간신히 ‘두리발’을 타게 된다 해도, ‘그들’의 발길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무얼까.
한때 맹렬했던 여름이 본색을 다하고, 이제 본격적인 가을 축제의 부산이 펼쳐진다. 공공과 민간이 함께한 ‘도시재생 문화 행사’가 이어지는 축제 현장에서, 어쩌면 여전히 1시간씩 지하철 엘리베이터에서 하염없이 차례를 양보하는 것은 장애인에겐 당연한 일일까. ‘몸도 편치 않으신데 집에 계시지…’ 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참아내며 길 위에 서 있는 머지 않은 미래의 자신을 상상해 보라.
지난여름 대만 출장길 ‘타이페이’의 산과 바다에서 전동휠체어와 장애인은 일상의 풍경이었다.
산 속 마을 지우펀, 진관스, 바다 예류지질공원 등에서 자유롭게 자연을 누린 그들과 부산 지하철에서 1시간씩 승강기를 양보한 지인이 자꾸 겹쳐 보였다. 부산 유수의 미술 전시, 연극, 뮤지컬 공연에도 장애인석은 관람이 불편하거나 전동휠체어 진입이 어려운 곳이 많다.
뇌병변장애인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갈 때면 2, 3기의 엘리베이터 승강기가 있는지, 300킬로그램 중량급 전동휠체어가 회전할 수 있는 반경인지, 화장실 문 폭이 전동휠체어 통행이 가능한지를 살핀다.
객석 첫 줄, 구석에 장애인석이 3, 4석뿐이면 공연을 포기하더라도 장애인의 시청권을 우선한다. ‘함께 즐거우면 행복한 세상’. 고(故) 류지호(29) 사회복지사로부터 배웠다. 지난해 시도되어 환영받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시민영화제 섹션 ‘커뮤니티 비프’가 올해도 이어진다는 보도를 보았다. 당시 평가단에서 제안된 ‘유니버셜 디자인’에 대한 ‘단어’의 함의는 ‘축제 산업’의 측면만큼 ‘시민’에 대한 인식이 깊이 구현되길 바란다. 장애, 인권, 소수, 다양성, 문화, 예술을 이야기하는 ‘국제’라는 이름을 내 건 모든 문화현장은 기억하기를!
장애의 불편을 마주한, 스스로에게 필요하게 될 ‘유니버셜 디자인’을 고민하는 그 모든 시간이 바로 살아 있는 축제다.
시인·낭독서점 詩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