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태어나 90년대 대학을 다닌 지금 40대 중에는 ‘386’ 선배들에 부채감을 가진 사람이 많다. 기자가 대학에 입학했을 땐 학생운동이 거의 끝물이었다. 대학 내 광장에선 여전히 집회가 열리고 교문 앞에선 간간이 최루탄도 터졌지만 부마, 광주, 6월 항쟁의 격랑이 물결친 80년대와 비교하면 분위기는 확연히 꺾였다. 사회과학서적 대신 토플책이,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가 인기였던 캠퍼스는 이념이 아니라 현실 쪽으로 분명히 기울어져 있었다. 한번은 학생회 사무실에 놀러갔다가 남포동 가두시위에 함께 나가자는 복학생 선배를 만났는데 그 손을 끝내 뿌리치고 나오는 내 모습이 두고 두고 부끄러웠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의에 헌신하는 그들에 비해 학업이나 취업같은 소아적 이기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작게 여겨졌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일기 몇 달 전 노무현재단의 유시민 이사장과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 간에 공방이 있었다.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당시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 누가 먼저, 더 자세히 당시 동지들에 대해 진술했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퉜다. 유 이사장이 한 지상파 방송에서 자신의 진술서 내용을 농담하듯 떠벌리자 심 의원이 정색하고 반박했다. 한때 동지였다가 이제는 양 극단의 진영에서 서로를 배신자라 손가락질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짠한 심정도 들었다. 험한 시대가 순수한 청년들에게 남긴 생채기라 여겼다.
조 후보자에 대한 실망이 처음부터 컸던 건 아니다. 90년대 초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 연루 경력으로 자격 시비가 일자 “자랑스러워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고 말할 때까지는 차라리 좋았다. 젊은 날 특정 이념에 경도됐던 자신을 합리화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모습이 ‘조국’답다고 생각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걸 변절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웅동학원 채무와 관련된 가족 간의 사기 소송 의혹, 내부정보를 이용한 사모펀드 투자 의혹에 이어 급기야 고교부터 대학 의학전문대학원까지 딸의 입시비리 의혹마저 불거졌다.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취득한 스펙이 또 다른 스펙의 사다리가 된 딸의 학력 관리는 조국 자신이 그토록 매도하던 ‘특권과 반칙’ 그 자체 아닌가. 그를 ‘강남좌파’라 한다지만 이쯤이면 강남 주민도 좌파도 모두 그를 부끄러워해야 할 판이다.
환멸을 더 부추긴 건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이다. 고등학교 1학년생이 2주간의 의대연구소 인턴 경험만으로 병리학 영어논문 제1 저자가 된 것을 놓고 “실습보고서가 에세이고, 에세이가 논문이다. 뭐가 문제냐”라고 강변한 사람은 현직 경기도교육감 이재정 씨였다. 후보자 동생 부부가 채무 면탈을 위해 위장이혼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자 “우리 형도 이혼했다”며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은 엉뚱하게 자기 가족사를 까발렸다. 조국 딸의 입시비리 의혹을 규탄하는 대학생들을 두고 “귀퉁배기를 때려주고 싶다”는 성직자도 있었다. 386 정치인의 대표주자쯤으로 인식돼온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언론이 가짜뉴스를 독가스처럼 피우고 슬그머니 이슈를 바꿔 의혹만 부풀린다”며 한술 더 떴다.
‘특정 세대는 특정 경험으로 인해 더 강고하고 효율적으로 조직화된 세대의 자원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다른 모든 세대를 압도하는 세대 네트워크와 위계체제의 조직자원을 보유하게 되었다. 민주화를 위해 만들어 낸 조직자원과 경험이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정치권력의 배분과 불평등한 자산 소득 분배구조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386세대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불평등의 세대’라는 책으로 요즘 주목받고 있는 서강대 이철승(사회학) 교수의 논문 구절이다.
이 사회 정치와 경제권력의 불평등을 모두 386의 탓으로 돌리는 건 옳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숨 쉬는 이 자유로운 공기를 그들에게 일부 빚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사람도 변했다. 젊은 날의 선택이 대단한 의지와 결단의 산물이었든, 그저 시대적 유행에 편승한 결과였든, 그들 자신이 이제는 기득권임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들이 만들고,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사회구조에 올라타서 그걸 개혁하겠다고 외치는 건 기묘하기까지 하다.
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다음 달 2~3일로 잡혔다. 검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장외 비평자가 아니라 장내 행위자로 섰을 때야 비로소 누군가의 실체와 실력이 드러나는 법이다. 차라리 기득권 386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이 여전히 좀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하는 진짜 386 선배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