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세대가 잘 쓰는 표현으로 ‘인싸’와 ‘아싸‘가 있다. 인싸는 인사이더, 아싸는 아웃사이더를 줄인 말이다. 내부자와 외부자로 단순히 번역하면, 젊은 세대가 그 단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잘 와 닿지 않는다. ‘우리가 넘이가’라는 표현이 있다. 인싸는 바로 ‘우리’다. 아싸는 ‘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에도 속하지 못하는 무리이다. 우리 사회 도처에 존재하는 특권계급에 대한 비판과 풍자에 주로 쓰이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각종 의혹과 관련된 논란 속에서 진보정치 진영의 인싸와 아싸가 구분되고 있는 것 같다. 진보정치 진영의 인싸가 되기 위해서 충족시켜야 할 조건들이 보인다. 첫째, 진보정치 진영의 리더들에 대한 흠집 내기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라. 의심하면 안 된다. 적들의 공격의 근거는 모두 조작된 가짜 정보이다. 둘째, 도덕적 결백주의를 털어버려라. 진보정치인도 사람이다. 왜 진보정치인에게만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나? 그런 결백주의로 내부 총질을 해대면 결국 적들에게 투항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이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게 어렵다. 그렇다고 보수정치 진영에 속하기는 싫다. 나는 86학번이다. 내 인생에서 성인으로서 가장 순수했던 시절이 동지들과 스크럼을 짜고 독재 타도를 외치던 그 시절이다. 그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을 지키고 싶다. 진보정치 진영에 속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아싸다.
나는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각각 지지했고, 지금도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기를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다. 그리고 진보정치 진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해 온 리더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고 조국 후보자이다. 그래서 지금 마음이 많이 아프다. 조국을 위선자라고 보는 시각이 퍼져나가고 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학자는 논문으로 말한다. 조 후보자의 그간 논문에서 위선을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가 SNS에 올린 글들은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조 후보자가 딸과 관련된 의혹들이 제기될 때 너무나 당당하게 불법은 물론이고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했을 때, 큰일 났다 싶었다. 나 역시 현행 실정법을 어긴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민정서법을 위반했다. 지금 진보진영의 인싸들은 국민정서법을 질투와 시기심에 이성을 잃고 가짜 뉴스에 속아 넘어간 우매한 대중의 왜곡된 인식이라 비난한다. 그러지 말자. 그 국민정서법이 박근혜를 탄핵했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의 의미를 우리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하지 말자.
진보진영의 인싸들은 조 후보자 본인과 그 가족에 대한 신상털이에 울분을 토한다. 그러면서 대학가의 조 후보자 임명 반대 집회를 주도한 학생들에 대한 신상털이에 대해서는 환호한다. 그건 신상털이가 아니고 진실 규명이란다.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자유한국당의 꼭두각시이거나 자기들도 스펙을 관리해 들어왔으면서 질투심에 남 욕하는 뻔뻔한 아이들이란다. 왜 마스크를 썼냐고 나무란다. 지난 5월 스승의날에 학과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교수님 사랑해요”를 외치는 영상을 만들어 보여줬다.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왜 썼냐고 물어봤다. 그냥 배시시 웃는다. 친구들끼리 마주 앉아서 카톡으로 대화하는 아이들이다. 우리 시절의 기준으로 이 아이들의 행동의 의미를 재단하지 말자.
보수진영은 조국 죽이기에 혈안이고, 진보진영은 조국 구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 와중에 인터넷이나 SNS 상에 올린 일반 국민의 생각에는 관심이 없다. 자기 자식 스펙 관리를 위해 논문에 저자로 올려주고 또는 서로 품앗이를 하는 교수들의 도덕적 해이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하는 진보진영 교수들의 뻔뻔함에 화가 난다. 제도에는 잘못이 없고 조국 개인의 탐욕만을 원인으로 모는 보수진영 교수들의 얄미운 행동에도 화가 난다.
국민은 조 후보자와 관련된 의혹들에서 드러나는 문제의 원인이 제도에도 있다면 그 제도를 바꿔 달라고 촉구한다. 국민이 진보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이유는 제도를 바꾸는 데에 있어서는 진보정치를 더 신뢰하기 때문이 아닐까? 인싸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다. 나는 아싸다.
동의대 공공인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