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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블랙홀 그림자 /조송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02 20:09:53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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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우주 천체 가운데 블랙홀만큼 신비로운 게 있을까. ‘알 수 없는 어둠의 심연(深淵)’이란 뜻의 블랙홀(black hole). 블랙홀이 아니었다면 인류가 어떻게 3차원 공간 속의 무한히 깊은 심연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블랙홀은 우리 인식과 상상의 지평을 넓혀 주었음에 틀림없다. 특히 올해는 천체물리학사에 블랙홀의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인류 최초로 블랙홀을 촬영하는 데 성공한 때문이다. 존재가 예견된 지 올해로 103년인 블랙홀은 우리에게 전에 없이 가깝게 다가왔다.

블랙홀 개념의 어머니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중력장 방정식)이다. 이 중력장 방정식이 블랙홀 개념을 잉태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 아니다. 칼 슈바르츠실트라는 독일의 천문학자다. 그는 일반상대성이론이 발표된 다음 해인 1916년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본 끝에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마술의 원’을 발견했다. 슈바르츠실트의 편지를 받은 아인슈타인은 ‘마술의 원’의 존재를 믿지 못했다. 이로부터 50년 후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존 휠러가 마술의 원 내부를 ‘알 수 없는 어둠의 심연’이란 뜻으로 블랙홀이라고 명명했다.블랙홀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은 1930년대 블랙홀보다 더 희한한 천체 개념을 발견했다. 독립적인 두 블랙홀의 끝이 서로 연결되는 형태의 천체가 중력장 방정식에서 도출된 것이다. 이를 자신의 이름과 제자 이름을 따 ‘아인슈타인-로젠 브리지’라고 이름 붙였다. 흔히 웜홀(worm hole)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웜홀은 수명이 극히 짧아 우리가 우주여행을 하는 데는 전혀 쓸모가 없다.

오늘날 블랙홀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의 거의 없다. 블랙홀은 별의 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긴다. 이를테면 태양보다 30배 이상 무거운 별이 죽을 때 폭발(초신성)하면서 블랙홀을 낳는다. 우리 우주에는 블랙홀로 넘쳐난다. 우리 은하 중심에 엄청나게 큰 거대질량블랙홀이 있고, 도처에 블랙홀이 숨어 있다. 이웃별의 움직임 등을 통해 그 존재를 간접 확인한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지난 4월 국제공동연구팀인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EHT) 프로젝트’ 연구진이 사상 처음으로 블랙홀을 직접 촬영한 ‘블랙홀 이미지’를 공개해 블랙홀 신드롬을 일으켰다.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거리의 M87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인데 질량이 자그마치 태양 60억 개에 해당하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이다. 그 영상은 붉은 도넛 모양이었다. 앞쪽은 밝고 뒤쪽은 다소 어두운 모양. 아니, 빛조차 집어삼키는 바람에 검게 보인다고 해서 블랙홀인데 어떻게 붉은 도넛 모양을 할 수 있을까? 블랙홀 전문가로 알려진 서울대 우종학 천문물리학부 교수는 “그 이미지는 블랙홀 영상이 아니라 ‘블랙홀 그림자 영상’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블랙홀 그림자라는 개념도 생소하거니와 그림자가 어떻게 붉은 색을 띨 수 있을까? 우 교수는 최근 펴낸 ‘블랙홀 강의’에서 ‘블랙홀 그림자’를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그림자란 ‘물체가 빛을 가리어 물체의 뒤에 나타나는 검은 형상’을 말한다. 색을 품은 빛이 차단되니 검은 형상으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이런 이치로 빛이 지나는 길에 블랙홀이 놓여 있다면 블랙홀의 그림자 역시 검게 보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블랙홀은 중력이 강해 뒤쪽에서 지나가는 빛을 끌어당겨 앞쪽에서도 보이게 한다. 이름 하여 중력렌즈 효과인데, 아인슈타인이 이미 104년 전에 예언한 내용이다. 그래서 붉은 도넛 모양의 블랙홀 그림자 이미지가 예상됐고, 실제로 촬영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밝은 블랙홀 이미지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스티븐 호킹의 ‘호킹 복사’에 의하면 블랙홀은 빛을 내뿜기도 한다. 블랙홀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만 하는 게 아니라 먹은 것을 토해내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 관측하는 건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우리는 블랙홀을 통해 3차원 공간 속의 심연을 상상할 수 있었다면, 이젠 블랙홀 그림자를 통해 색깔을 가진 그림자를 그릴 수 있게 됐다. 또 머잖아 ‘밝은 블랙홀’이라는 형용모순적 용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지 모른다.

웹진 인저리타임 대표·동아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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