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0.04% 하락했다. 소비자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공식적인 통계는 소수점 첫째자리까지만 잡기 때문에 통계청이 발표한 공식 변동률은 0.0%다. 이 또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5년 이후 처음이다. 소비자물가 변동률은 올해 들어 8개월 연속 0%대에 머물렀는데, 이는 2015년 2월부터 11월까지 10개월간의 0%대 이후 가장 긴 기록이다.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는 디플레이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작금의 물가 하락은 경기 침체 속에 나타나는 현상이어서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3일 거시경제협의회를 열고 “마이너스 물가는 일시적인 현상이며, 디플레이션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수요 위축이 아닌 농축수산물·석유류 가격 약세 등 일시적 요인과 정부 복지정책 강화 같은 제도적 요인이 물가 하락의 원인이라며 연말부터 물가가 다시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과도한 걱정은 자기실현적 경제활력 저하로 이어진다”며 비관론을 경계하기도 했다.
정부 관측대로라면 다행이겠지만, 국내외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아 여간 걱정이 아니다.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을 보여주는 근원물가가 낮은 게 한 요인이다.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0.8% 상승에 그쳤는데, 이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지면 환란 여파가 미쳤던 1999년(-0.21%)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경제 전반의 물가 수준 지표인 GDP디플레이터도 지난해 4분기(-0.1%), 올해 1분기(-0.5%), 2분기(-0.7%)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했다. 게다가 증시에서 빠져나간 돈이 안전자산으로 몰리면서 선진국의 국채와 금값이 급등하는 등 세계경제 역시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실정에서 정부는 말만으로 국민을 안심시키려 해선 안 된다. ‘자기실현적 경제활력 저하’를 막으려면 가시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핵심은 민간의 투자와 고용을 끌어낼 수 있는 방안이다. 그것만이 불안감을 제거하고 시장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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