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무렵부터 15년가량 산소통을 달고 사는 아이가 있다. 2003년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는 돌을 앞두고 응급실에 실려갔고, 11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갈 때는 스스로 호흡할 수 없어 목에 구멍을 내 산소 튜브를 끼고, 코에 호스를 달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임성준 군. 2016년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나온 성준이(당시 13세)는 무거운 산소통에 이어진 튜브를 코에 연결한 모습이었다. 이후 여러 방송과 신문에 소개된 성준이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담했고, 아팠다. 산소통을 끌고 다니며 학교에 가고, 폐 질환으로 비롯된 합병증인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온몸을 긁고 있거나, 2, 3년에 한 번씩 기도삽관 수술을 하는 등 힘겨운 삶을 이어갔다.
어디 성준이뿐이겠는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가 사망한 것으로 드러난 이는 1400명이 넘고, 피해 신청자는 6500명 이상이다. 오랜 기간 가습기 살균제가 각 가정의 필수품으로 인식됐기에 현재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드러난 지 올해로 8년. 2011년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가 ‘원인 미상 간질성 폐렴’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에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부터다. 당시 관련 기사를 보며 가슴이 쿵 내려앉았던 기억이 있다. 첫 아이가 두 돌이 채 안 됐을 때, 불과 얼마 전까지 집 욕실에 놓여 있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살균 99.9%,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문구를 믿고 몇 차례 사용했던 터였다. 매일 사용하기 귀찮아 쓰는 둥 마는 둥 하다 버렸던 게 아이를 살린 것이라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다시 성준이를 떠올린 건 ‘조국 인사청문 정국’에 다소 주목을 덜 받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 규명 청문회 때문이다. 지난달 27, 28일 제조·판매기업 관계자와 전현직 관료들을 대상으로 열린 청문회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참사의 기억을 소환했다. 사건이 수면으로 떠오른 지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해자 처벌은 더디고, 피해 보상은 막막했다. 무엇보다 살인 물질을 만들고 팔았던 대기업과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정부는 발뺌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가습기 살균제 기업 중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의 대표는 “정부가 보다 안전한 기준을 만들고 관리 감독을 철저히 했다면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와 가족에게 사과하겠느냐는 질문에 전 환경부 장관은 “현직 대통령이 사과했지 않느냐…1990년대는 인터넷이 없어 원인 물질을 엄격히 규제하는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기 어려웠다”며 사과를 거부했다. 무성의한 답변이 이어진 청문회는 사람의 생명보다 이익을 우선하는 기업, 안전하지 못한 제품을 걸러내지 못한 정부의 무능력과 복지부동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다룬 저서 ‘빼앗긴 숨’은 한국에서만 벌어진 참사의 배경을 자세히 소개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화학물질을 사용한 살생물제가 쉽게 유통될 수 없고, 규제 역시 훨씬 까다로우며, 화학제품을 바라보는 인식도 우리와 크게 다르다고 했다. 유공(현 SK케미칼)이 처음 가습기 살균제를 시판하던 1994년부터 별다른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이후 17년 동안 안전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채 유통됐다. 이런 끔찍한 결과를 낳은 가습기 살균제는 과거 대형마트 매대 위에 당연하다는 듯 자리 잡고 있었다. ‘빼앗긴 숨’의 저자는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된 기업과 두 손 놓고 있던 정부 탓에 국민이 살생물제의 실험 대상이 됐다고 한탄했다.
당사자가 아니기에 이번 참사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같은 환경재난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이번에는 다행히 ‘내 일’이 아니었지만 외면하고 망각했다가는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를 또 다른 재난을 겪을 수 있다. 피해자들이 기업과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배상을 받는지, 관련법이 제정돼 다시는 안방에서 벌어지는 대량 학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지 끝까지 기억하고 지켜봐야 이 같은 비극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독자여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