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과 프레젠테이션. 기업 업무의 꽃이다. 이 꽃을 피우는 도구가 있다. 파워포인트(프레젠테이션용 소프트웨어)다.
직장인의 능력은 파워포인트 구사 능력으로 판별된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파워포인트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부실한 내용을 화려한 파워포인트 디자인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이 파워포인트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이유다. 슬라이드 뒤에 숨지 말고 글로 승부하라는 얘기다.
아마존도 그런 기업 중 하나다. 제프 베조스는 세련된 파워포인트 기술 대신 서술형 문장을 요구했다. 포장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본질과 핵심에 집중하라는 메시지였다.
파워포인트의 실각, 권좌는 글쓰기의 차지가 되었다. 글을 잘 써야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우후죽순 생겨난 ‘글쓰기 교실’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수강료도 하나같이 비싸거니와 효과 역시‘글쎄’이다. 글은 두어 달 배우고 익힌다고 확 늘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내 영혼이 탄탄히 뒷받침되어야 하는 내 삶,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핵심은 ‘생각’이다. 내 생각을 ‘적으면’ 글이 되고 내 생각을 ‘소리 내면’ 말이 된다. ‘좋은 글’을 쓰고 ‘좋은 말’을 하려면 먼저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 좋은 생각의 마중물은 무엇일까? 요리를 하려면 재료가 필요하듯 생각도 마찬가지다. 재료가 있어야 한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게 아니다. 기존 개념과 생각과 감정을 이렇게 붙이고 저렇게 이어서 새로운 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방향이 제각각인 팩트들을 새로운 관점과 맥락으로 편집하여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좋은 생각의 관건은 그래서 다양한 ‘생각씨앗’ 그리고 그 씨앗들의 창의적 조합이다. 신문은 그런 싱싱한 생각씨앗의 보물상자다. 신문에는 세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전문가’와 ‘편집’이라는, ‘선별’의 시스템으로 걸러낸 이야기들이다. 각 분야 전문가가 채굴한, 세상 변화를 머금은 원석들이다. 그러니 신문은 생각의 소재를 찾고 캐는 발견의 장이다. 재료가 풍성하면 요리가 맛나듯 글감이 풍성하면 글도 좋아지기 마련이다.
신문이 가진 또 다른 장점은 글의 완성도다. 신문은 동시대의 표준문법을 준수한다. ‘미문(美文)’은 없을지언정 ‘비문(非文)’ 역시 없다는 얘기다. 사실을 어떻게 묘사하고 주장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눈여겨 읽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나의 문장도 딴딴해진다.
신문에는 건조한 글만 있는 것도 아니다. 문학작품 못지않은 유려한 글도 많다. 책이나 공연에 관한 문화면 기사가 그렇다. 이면의 해석과 미래의 전망을 담은 칼럼도 있다. 그런 칼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와 통찰은 덤이다. 그래서 신문은 내 생각을 벼리기 위한 재료의 보고이고, 내 생각의 표현을 갈고닦을 수 있는 문장의 집적이다.
이런 신문 기사를 웹과 앱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접하는 기사는 말초적이고 단편적이다. 독자의 관심을 낚기 위한 선정적인 헤드라인에 따라 조회 수가 널을 뛴다. 아날로그로 얻는 오프라인상에서의 교육 효과는 디지털과 그 차원을 달리한다. ‘검색’해서 얻은 지식으로는 ‘사색’으로 쌓은 지혜를 결코 이길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이 너나없이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전철 안, 메고 있던 가방에서 신문을 꺼내 읽는 이유다. 관심이 가는 기사에 밑줄을 치고 별표를 그리고 메모를 한다. 신문을 찢어 주제·키워드별로 분류하고 스크랩을 한다. 그런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오롯이 뇌로 전달된다. 그 모든 과정이 바로 사색이다.
이렇게 톺아 읽는 글들을 소재로 검증하고, 연구하고, 분석하고, 사례를 찾고, 기획하고, 편집하고, 스토리를 입히면 그게 곧 나의 요리, 즉 나의 생각이 된다. 그 생각을 ‘쓰면’ 글이 되고, 그 생각을 ‘뱉으면’ 말이 되며, 그 생각을 ‘살면’ 삶이 된다. 그 사람의 삶이 곧 그 사람의 말과 글이 되는 건 그래서다.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당장 신문부터 읽을 일이다.
열린비즈랩 대표·‘그래서 캐주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