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부산에서 진행 중인 ‘핫(hot)’한 전시를 꼽는다면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한 예술가 그룹 ‘랜덤 인터내셔널’이 선보이는 ‘레인룸(Rain Room)’전이다. 개막한 지 보름을 넘긴 지난주 부산현대미술관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주말 예매권은 전회 매진인 데다 입장 전부터 인증샷 찍느라 분주한 관객들까지 지역에선 흔치 않은 전시장 풍경을 보였다. 런던·뉴욕·LA·상하이 등을 순회하며 세계적 관심을 받아서일까. 예술적 시선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은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다. 흥미로운 건 올해 하반기 가장 많은 기대를 모은 전시인 레인룸이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해 개관한 부산현대미술관이 인지도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도 제 역할을 하며 자리 잡기에 성공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미술 경기 불황에 아랑곳없이 지난 일 년간 부산 곳곳엔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과 갤러리가 등장했다. 지난달 14일 해운대구 센텀시티에 문을 연 국내 최대 규모(700평) 미디어 전문 미술관 ‘뮤지엄 다’도 문을 연 지 2주 만에 관객 2만5000명이 몰렸다. 뮤지엄 다 관계자는 “그동안 부산에서 블록버스터급 전시가 드물었다. 주로 회화나 조각 위주의 ‘보는 전시’에서 대중이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전시’를 선보인 전략이 통한 것 같다”고 했다. 지난 6월에는 서울 홍대 앞에 있던 갤러리메이가 수영구 망미동으로 이전해 개관했다. 회화 장르에만 국한해 전시를 여는 기존 갤러리들과 달리 현대미술 작가의 영상 작업 등 신선한 전시를 선보여 미술계도 반색하고 있다. 인근에 새로 개관한 국제갤러리 부산점, 갤러리이배 수영전시관 등도 지역 미술씬의 다양성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부산 미술계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갤러리와 대안공간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미술계의 침체가 거듭되면서 지역의 미술 생태계도 축소됐다. 최근의 이러한 변화는 부산이 새로운 미술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현대미술 작품을 보여주는 공간과 환경이 다양해지고, 작품의 형식만 보더라도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등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 전시 문법을 깨고 현대미술의 트렌드와 관객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한 때다. “문화는 배척되거나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우러짐으로써 창조되는 과정”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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