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파두, 영혼의 노래를 듣다 /김정화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08 19:40:20
  •  |   본지 2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인간은 반드시 떠나게 되어 있다’.

오디세우스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올해는 유난히 이별이 많았다. 나를 떠나간 사람도 있고 내가 마음을 닫은 인연도 있다. 이승을 떠난 사람이야 숙명으로 여기지만 멀어진 인연의 끈은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리다.

그러나 숱한 만남과 이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인생길이 아닌가. 이미 어제의 길은 지났고 오늘은 다시 눈부시게 걸어가야 한다. 그 생각이 나를 이번 여름에 지구 반대편의 땅 포르투갈로 데려다 놓았다.

과연 해양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이베리아반도에서 넘어오는 지중해 바람은 거칠었다. 오디세우스가 세웠다는 수도 리스본의 언덕길을 오른다. 노란 전차가 지나간 자리 위에 붉은 제라늄 덤불이 그늘을 만든다. 고풍스러운 골목 벽은 타일 작품인 아줄레주 그림이 즐비하다. 풍랑으로 정박한 오디세우스가 그를 사랑한 오피우사 여왕을 배신하자, 화가 난 여왕이 리스본을 흔들어 일곱 개 언덕으로 갈라놓았다는 전설이 푸른 타일 속에 펼쳐졌다.

후미진 뒷골목 사이로 낡은 선술집들이 붙어 있다. 포르투갈 여행객이라면 한 번쯤 포트와인에 정어리 통조림을 안주 삼아 리스본의 밤을 기다린다. 파두 음악의 매력에 빠지기 위해서다. 카페나 변두리 술집에서는 유명 파두 가수 사진들을 걸어놓고 장사를 한다. 운이 좋으면 여관 창문 너머나 길가에서도 절정으로 치닫는 파두 음악에 취할 수 있다. 스페인에 플라멩코가 있다면 포르투갈에는 파두가 있다. 플라멩코는 비극적인 정열을 격렬한 춤과 함께 나타내지만, 파두에서는 춤을 찾아볼 수 없다. 오직 가슴을 후벼 파는 영혼의 노래만 있을 뿐이다.

파두는 운명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국토의 절반을 대서양과 접한 지리적 특성도 파두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500년간 지배했던 무어인을 내쫓고 한때 대항해시대를 이끈 포르투갈인에게 바다는 동경의 세상이자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바다로 떠난 사나이들은 망향가를 불렀고 기다리던 여인들은 그리움을 노래했다. 쓸쓸한 사랑과 고단한 운명과 몸부림치도록 외로운 인생은 모두 파두 가사가 되었다. 그것이 다 운명이라고 믿는 사람들. 그들은 지금도 누구나 파두를 부른다. 어부도, 생선 장수도, 택시 기사도, 요리사도 모두 가수이고 삶의 주인공이다.

땅끝에서 부르는 리스본 파두를 듣는다. 무명의 여가수가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검은 돛배’를 육성으로 부른다. ‘당신이 탄 검은 돛배는 밝은 불빛 속에서 너울거리고, 바닷가 노파들은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죠’. 귀항선에 꽂힌 검은 돛대에서 이미 여인은 슬픈 소식을 예감한다. 눈을 감은 채 몸을 젖힌 가수의 비장한 표정에 청중은 숨을 죽인다.

파두 가수들은 검은 옷, 검은 망토를 두르고 노래한다. 이백 년 전 파두 가수였던 마리아 세베라를 기리기 위해서다. 집시였던 그녀가 백작과 사랑에 빠졌으나 서민의 음악이었던 파두는 외면당하고 신분의 벽마저 넘지 못한 채 스물여섯 살에 요절하고 만다.

이후 그녀의 명복을 비는 뜻에서 검은 옷은 파두 가수들의 전통 복장이 되었다. 만돌린을 닮은 열두 줄 악기 기타라 반주가 밑바닥에서부터 치오르는 감정을 다독여 준다.

파두의 음이 절정을 향한다. 길게 뽑은 비음과 가성으로 낮게 읊조리다가 전율하듯 극도의 고음으로 부르짖는다. 강렬한 바람처럼 밀려오는 성량이 가슴을 흔든다. 비통하고 애절하며 둔탁하고 거칠다. 마치 헨델의 메시아를 듣는 착각이 인다. 노랫말을 알지 못하더라도 심장을 파고드는 음색에 압도되고 만다. 한과 상처와 사무치는 그리움의 창법. 포르투갈에서는 이것을 사우다지(Saudade)라 부른다. 파두의 생명이다.

노래가 끝났다. 내 여행도 끝이 났다. 이제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는가. 오디세우스가 그토록 힘겹게 보냈던 여행의 목적도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위한 것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이곳 사람들이 파두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듯이 생의 이별도 숙명으로 안을 수밖에…. 끝은 다시 시작을 의미하는 것….

평론가·수필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2. 2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3. 3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4. 4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5. 5“끝내 알 수 없었던 어머니 마음…그 알 수 없음이 인간이죠”
  6. 6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7. 7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8. 8“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9. 9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10. 10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1. 1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2. 2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3. 3李 “집값 놀라울 정도로 하락…통계 제대로 알려야”
  4. 4정계 “지역언론 독립·공공성 훼손없게 계속 관심을”
  5. 5시의회 상임위 제한 폐지 논란일자 결국 심사 보류
  6. 6국힘 신임 부산행복연구원장에 오경은 전 구의원
  7. 7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8. 8“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9. 9국힘 “가덕 건설 의지 없는 정부…공사비 증액 확약해야”
  10. 10정치권 “능인선원 경영능력 불합격…국제신문 회생 동의를”
  1. 1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2. 2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3. 3“부산 해양수도·북극항로 육성, 선원 역할 중요”
  4. 4[증시와이드] 불확실성 커진 증시…우량주 중심 냉정한 대응을
  5. 5한진칼 주식 더 사는 조원태…호반과 지분경쟁 2R
  6. 62050년 중간저장시설·2060년 영구시설…정부, 방폐물 관리 3차 계획안 여론 수렴
  7. 7석유류·공업제품값 ‘고공 행진’ 지속…부산 10월 물가상승 4개월만에 최고(종합)
  8. 8‘반도체 소부장’ 원익 공채에 1만2000명 몰려
  9. 9한양증권도 털렸다…고객·임직원 정보 일부 유출
  10. 10주가지수- 2026년 11월 3일
  1. 1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2. 2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3. 3“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4. 4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5. 5에코델타에 유치원·초·고교 추가 신설
  6. 6해군 3600t급 디젤잠수함 ‘서희함’ 진수
  7. 7면세유 23억 원어치 빼돌린 유통업자 집유
  8. 8141개 시민단체도 노동계도 ‘국제신문 회생’ 인가 촉구
  9. 9역삼동 연쇄방화 77세 이명수(종합)
  10. 10첫 공소청 수장 후보, 이정현·박철우·예세민 물망(종합)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3. 3MLB 애틀랜타 김하성, 퀄리파잉 오퍼 못 받아
  4. 4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5. 5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6. 6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7. 7BNK 개막전 첫 승…두터워진 선수층 빛났다
  8. 8[뭐라노] 롯데가 스마트 야구를?
  9. 9체력 비축한 마법사, 타선 폭발한 사자…누가 웃을까
  10. 10동의과학대학교,‘제1회 부산지역 전문대학 유학생 축구대회’ 준우승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등골 프로텍터
바이낸스 턴 북한 해커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제신문 정상화에 여야 한뜻…능인선원 결단하라
대통령 순방 정보 유출…국가 보안체계 전면 점검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일상으로의 초대
SNS라는 광장,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있는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