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벤치마킹’이라는 말이 무섭다. 공공 기관 수장이나 고위 인사가 “우리도 ○○을 벤치마킹해서…”라는 말을 꺼낼 때 가슴이 철렁한다. 벤치마킹이 제대로 된 원래 의미를 벗어나, 뒤틀리고 앙상하게 쓰이는 사례를 봐왔기 때문일 터이다.
문화나 공공 영역에서 새로운 성공 사례의 탄생은 치열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문제의식이 치열하니,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창의적이다. 치열한 문제의식과 창의적 과정이 만나니 비로소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렇게 나온 좋은 결과를 참고하고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현재 통용되는 벤치마킹 개념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높은 분들은 치열한 문제의식이나 창의적 과정을 싫어하거나, 별 관심이 없다.
치열한 문제의식과 창의적 과정에 중점을 두는 순간, 들어야 할 의견은 많아지며 시간은 더 걸리고 전체 과정에 관한 통제권을 잃지 않을까 불안도 엄습한다. 그러니 이렇게 된다. “마 됐고! 저기 보이는 저 ‘좋은 결과’만 가져와. 정신(치열한 문제의식)과 과정은 필요 없어.” 그렇게 ‘이른바 벤치마킹’의 결과물이 탄생한다. 예컨대 새 건물을 하나 짓는 것이다. 문제의식의 치열함과 창의적 과정을 빼고, 남이 해놓은 결과물만 쳐다본 ‘벤치마킹’이 성공할 리 없다. 필패다.
2022년 개관 목표인 가칭 ‘부산오페라하우스’(1800석·북항)와 ‘부산국제아트센터’(2000석·부산시민공원) 건립사업을 들여다볼 때 저 ‘벤치마킹의 함정’이 곧잘 떠오른다.
귀중한 두 예술시설의 운명을 예단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례를 ‘벤치마킹’해 두 건물 건립계획을 입안했다는 구체적 근거도 없으므로 신중한 마음이다.
하지만 오페라하우스를 짓자고 할 때 시드니오페라하우스가 무수히 참고사례로 언급됐다. 아트센터는 부산 현황을 면밀히 검토해 접근했다기보다 입지에 중점을 두고 다소 ‘막연하게’ 과정이 진행됐다고 나는 본다. 도심에 좋은 공연시설을 지어 성공한 사례는 나라 안팎에 많으니 참고사례를 찾기는 쉬웠을 것이다.
어찌 됐든 두 건물의 건립사업은 진행 중이다. 지금은 두 건물이 부산 예술문화 발전을 이끌 전진기지이자 핵심고리가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자면 앞서 언급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지금이라도 다시 꺼내야 한다. 오페라하우스와 아트센터 설계·시공·운영을 자문하는 이용관 ‘문화시설 총괄 프로젝트 매니저’(부산문화회관 대표)는 최근 “오페라하우스 운영협의체의 기술분과위원회가 요청한 설계변경제안을 검토하는 것”을 해야 할 첫 업무로 꼽았다(국제신문 지난달 28일 자 19면, 29일 자 20면 보도). 이는 아직 개선과 희망의 여지가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먼저 이 점을 살펴보자. 아트센터에 상주 예술단체를 위한 연습실과 필요 공간을 두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현재 부산시 입장이다.
이 방안을 듣고 느낀 감정을 털어놓자면, 아쉬움이 아니라 ‘무서움’이었다. 달리 말하면, 공포였다.
연습공간이 없다는 건 대관공연만으로 부산에서 2000석 클래식 음악 공연장을 운영한다는 뜻 아닌가? 부산의 클래식 음악계 규모로는 감당할 수 없다. 서울·수도권 단체와 업체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렇게 되면 아트센터 운영이 부산 음악예술 발전과 연계· 연동되지 않고 따로 놀 공산이 정말로 커진다.
‘부산 예술 발전을 위해’ 짓는다는 정신은 어느새 사라지고 건물만 생긴다면, 운영비를 대는 시민의 의욕과 보람도 쪼그라들 것이다. 어떻게 이런 발상이 나오게 됐을까?
오페라하우스 또한 ‘건물’에만 신경 쓸 게 아니다. 정신·과정·내용·시스템을 마지막 순간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많은 음악인이 주장하는 대로 오페라하우스는 프로모션(대관·기획)과 프로덕션(제작)이 원활하게 맞물리는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다. 지역 예술계에 더불어 활력을 불어넣고, 재생산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산시는 ‘프로모션’에 중점을 두겠다는 방침인 듯하다. 건물 설계와 구상이 그렇게 돼 있다. 부산시 방침대로 간다면, 오페라하우스가 지역예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는 한계가 생길 것이다.
물론, 오페라하우스가 좋은 공연을 많이 기획하는 ‘프로모션’만 잘해도 분명히 의미는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 아트센터와 기능이 중복되거나 부딪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를 잘못 조율하면 두 시설은 운영비는 많이 들지만 지역 예술 발전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수도권 대형기획사에 의존하는 ‘늪’이 될 수 있다.
편집부국장 겸 인문연구소장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