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 30일 인천에서는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가 열렸다. 3국 문화부 장관회의는 2007년 중국에서 처음 열린 이후로 11회째를 이어왔다. 여기서 3국은 인천 선언문을 발표했다. 서언과 함께 8개 항목으로 구성된 선언문을 통해 한중일 3국은 문화교류 협력과 다가오는 새로운 10년을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 향후 10년, 3국 문화 교류와 협력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 핵심은 다음 일절 속에 함축돼 있다. ‘3국은 앞으로의 한중일 문화교류와 협력도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상호 존중과 호혜의 원칙 아래 서로의 문화 다양성을 증진하고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 구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한중일 문화교류와 협력의 궁극적 지점은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 구축에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현재의 동아시아 정세를 고려한다면 이러한 3국 간 선언은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동아시아 지역의 궁극적 평화를 도모할 수 있는 문화교류를 어떻게 실천하느냐는 점이다.
이를 실현해 나가려면 우선 한일 간의 문화교류부터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일 간의 정치적, 경제적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돼 문화교류에도 빨간불이 켜져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재 한일 간의 긴장과 갈등을 풀어갈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은 문화교류를 통하는 길밖에 없는 것 같은 형국이다. 이 점에서 부산은 한일 간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고민만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일 간 문화교류를 주도할 수 있는 유리한 입지에 놓인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부산과 일본 사이에는 다른 지역보다 민간을 중심으로 한 문화교류가 다층적이면서도 다원화되어 왔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 교류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한일 간의 조선통신사를 매개로 한 문화교류는 깊고도 넓다. 한일 간 갈등이 아무리 비등하던 시절에도 서로 신의를 바탕으로 한 평화의 길은 계속 이어져 왔다. 그 결과 2017년에는 한일 양국이 조선통신사 기록 유산을 유네스코에 공동으로 등재하는 전기를 맞기도 했다. 전쟁과 갈등을 끊임없이 지속하는 인류 역사 속에서 조선통신사가 보여준 양국 간의 행로는 지구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귀하게 여겨야 할 평화의 메시지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화교류를 통한 평화정신의 메시지를 부단히 이어나감으로써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올해는 조선통신사 기록유산을 유네스코에 공동 등재한 지 2년 차를 맞는다. 그동안 한일 양국은 등재 이후에 활발하게 전개해야 할 등재한 기록물에 대한 활용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우리 정부는 내년 예산에서 문화재청 예산을 1조636억 원으로 책정했다. 이 예산은 문화재청 사상 최대의 예산이며, 최대 비율 증액이다. 이렇게 예산을 증액한 이유 중의 하나는 세계유산 등재와 보존 관리를 통한 유산 보존 선도국가로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는 현재 16개의 기록 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했다. 이들 모두 각각 세계 인류에게 무한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 2개 국가가 공동으로 등재한 것으로는 조선통신사 기록유산이 유일하다. 이러한 점에서 이 사업을 관장하고 있는 부산문화재단은 증액된 국가 차원의 예산을 어떻게 확보해서 국민에게 세계유산의 가치를 다양하게 향유할 수 있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등재 기념 2년 차를 맞아 한일 간 문화교류 방향을 새로운 차원으로 열어가야 할 시점이다. 왜냐하면 현재 한일 간 갈등의 파고가 그 어느 때보다 높고 심하기 때문이다. 올해 조선통신사 기록유산 등재 2년 차 기념식은 대마도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일 양국이 이 기념식 모임에서 갈등을 넘어설 가칭 대마도 선언이라도 할 수 있으면 어떨까? 대마도에서 시작된 작은 평화의 목소리가 파도를 통해 한중일 3국에 전해질 수 있도록….
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