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일 바람’이란 말이 있다. 2월 초 입춘 이후 210일째 되는 날 부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대략 9월 초 추석 전후다. 벼가 머리를 숙일 무렵 올라오는 이 바람은 강도가 유난히 세고 비도 많이 뿌려 예부터 무척 경계했다. 농사 속담에 ‘210일 바람 무섭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바다 건너 일본까지 정복하려다 실패한 것도 이 바람 때문으로, 일본에선 ‘신풍(神風)’이라 쓰고 ‘가미카제’라 읽는다. 역대 최대 재산피해를 낸 태풍 1위 ‘루사’(2002년)와 2위 ‘매미’(2003년) 때 모두 이 바람이 강타했다.
‘기상청 소풍가는 날 비가 온다’는 속설처럼 날씨를 정확하게 예보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슈퍼컴퓨터나 기후 모델을 돌려도 그 장비들이 쏟아내는 데이터를 해석해내는 작업은 결국 사람(예보관)의 몫이다. 특히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평지가 발달한 나라와 달리 한국은 산 바다 강이 어우러진 복합 지형이어서 변화무쌍한 기상 현상을 예측하기 더 어렵다고 한다. 오래전 취재현장에서 만난 한 베테랑 예보관은 “기자들이 ‘오늘 호우경보 내릴 거냐’고 물으면 그 압박감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지난 주말 역대급으로 예고됐던 제13호 태풍 ‘링링’이 부산을 비롯한 남부지방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지나갔다. 통상 경상도와 강원도를 할퀴고 동해 쪽으로 빠지던 태풍이 이번에는 서해 쪽으로 돌아나가면서 서울 등 수도권과 충청·전남권에 피해가 크다고 한다.
그러나 나라 전체가 결딴날 것처럼 법석을 떠는 방송보도를 보면서 동남권 주민들은 위화감을 느꼈을 법도 하다. 부산항 부두의 골리앗크레인이 줄줄이 쓰러지고 부산 경남이 초토화되다시피했던 매미 태풍 때도 그 정도 요란은 피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도권 주민들이 태풍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제 집 앞 사건을 크게 취급하는 언론의 속성 탓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동네날씨 예보가 생긴 지 10년 넘었다. 서울 부산 대구 등 시·도·군 광역 단위로 제공되던 기상정보가 2008년부터 읍·면·동 단위로 세분화됐다.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자기가 사는 동네의 날씨를 언제든지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다. 여름철 최고기온이 동래 금정과 해운대 수영이 4~5도씩 차이 나는 걸 보면 같은 부산 땅이 맞나 싶기도 하다. 이번 링링을 계기로 날씨 예보와 보도에도 더 확실한 분권과 자치가 필요함이 분명해졌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