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가 지나자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부는 등 조금 시원해졌다지만, 여전히 습하고 덥다. 오랜만에 베란다에 앉아 집 왼편 마당을 보니 대추나무 감나무 모과나무에 열매가 익어가고 그 너머로 잘 정돈된 마당과 연못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잡초와 연못 속 수초로 엉망이던 곳이다.
큰아이는 이곳 산청의 민들레 대안학교에서 중·고교를 마치고 인근 도시의 모 대학에 다니면서 아빠인 날 대신하여, 집 안팎의 모든 잡일을 도맡아 하던 우리 집에 없어서는 안 될 인재였다. 아내가 지시만 하면 그는 풀베기 작업부터 나무 자르기, 집수리, 하우스 농작물 관리, 심지어 밥과 빨래 등 부엌일까지 그야말로 못 하는 게 없는 만능 기능공이자 농부였다. 이러했던 녀석이 한 달 전쯤, 돌연히 다니는 학교 앞에 원룸을 얻어 나가 버렸다. 겉으로는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않아 아내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역시 녀석은 수년째 집 안일하는 것에 지쳐, 가장인 아빠가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집 관리를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발칙한 이유를 아내에게 대었다고 했다.
아들이 우리 집에서 원룸으로 이사 가는 날, 이삿짐을 날라주어야 함에도 나는 놈의 말이 너무 괘씸하여 합천(경남문화예술진흥원 입주작가실)으로 가버렸다. 그곳에서 나는 녀석의 일을 까맣게 잊고 사나흘 정도 지내다 집으로 돌아오니, 집이 텅 빈 것을 새삼 확인했다. 남아 있는 아내와 막내딸은 각각 직장과 학교(학원) 생활에 너무 바빠, 녀석의 말대로 집 안팎을 관리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이어서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예초기와 낫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집 주위부터 마당까지 풀을 베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초기의 한계(시골에서 살아본 분은 다 아시겠지만 이건 30분 돌리면 끝)와 돌아서면 돋아나는 풀의 끈질긴 생명력 때문에 나는 며칠 만에 녹초가 되어버렸다. 할 수 없이 자존심을 굽힌 나는 녀석에게 주말에만 집에 와서 도와달라고 사정했건만, 아들은 결심한 바가 있는지 냉정하게 거절하였다. 그제야 나는 도시에서 직장 다닐 때 컴퓨터만 만지작거리며 체력을 키우지 않은 점과 이과보다 문과를 선호하여 기계 작동에 서툰 점, 시골로 들어와서 글 쓴답시고 모든 일을 아내와 아이에게 미룬 점, 막내 딸아이를 너무 귀하게 키워 대체인력을 마련하지 못한 점 등을 뼈아프게 후회했다.
그러던 와중에 부산에서 누님의 딸 식구가 피서를 겸해,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얼마나 반가운지 자진하여 그들을 낮에 인근에 있는 폭포로 데려가 실컷 놀게 하고, 밤에는 집 베란다에서 고기를 구워 먹였다.
조카사위는 현직 건축업자로서 아들을 능가하는 일꾼이고, 그에 딸린 식구가 네 명이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나의 간청에 나와 그들은 아침부터 베란다 근처에서 풀을 뽑고, 조카사위는 우리 집의 숙원이던 연못 속의 수초 제거 작업을 시작했다. 조카딸과 세 명의 아이는 고사리 손으로 완벽하게 임무를 완성했으며, 조카사위는 장화를 신고 낫을 든 채 연못으로 들어가 그리 어렵지 않게 그곳을 깨끗이 정돈하고 말았다.
그날 이후 나는 꼭 내가 아니더라도 일 잘하는 다른 이의 도움을 받으면 되겠다 싶어, 같은 시기에 귀촌한 이웃 마을 사람에게 제초 작업을 부탁했다(사실, 아내에겐 비밀로 했지만, 그들에게 일당을 지급하였다). 집 주위와 마당 등은 나와 조카네 식구가 해결했지만, 문제는 800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우스 주변과 뒤편, 쉼터는 마치 정글을 방불하게 하는 곳이었다.
며칠 후 이웃 마을 사람 둘이 집으로 왔다. 그들은 성능 좋은 예초기로 반나절 만에 그곳을 완벽하게 처리했다. 그날 밤 나는 연못 주위와 하우스 그리고 뒤편 쉼터의 깨끗하게 정리된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 녀석에게 보냈다. 녀석의 반응은 내 생각과는 달리 시큰둥하게 ‘군데군데 깨끗하게 베어지지 않은 풀이 많으니, 다시 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순간 나는 눈물이 나올 뻔하면서 당장 올겨울에 화목보일러에 사용할 땔감을 어떻게 구하고, 어떻게 자를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