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시골 아빠 길들이기 /이인규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15 19:00:48
  •  |  본지 2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처서가 지나자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부는 등 조금 시원해졌다지만, 여전히 습하고 덥다. 오랜만에 베란다에 앉아 집 왼편 마당을 보니 대추나무 감나무 모과나무에 열매가 익어가고 그 너머로 잘 정돈된 마당과 연못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잡초와 연못 속 수초로 엉망이던 곳이다.

큰아이는 이곳 산청의 민들레 대안학교에서 중·고교를 마치고 인근 도시의 모 대학에 다니면서 아빠인 날 대신하여, 집 안팎의 모든 잡일을 도맡아 하던 우리 집에 없어서는 안 될 인재였다. 아내가 지시만 하면 그는 풀베기 작업부터 나무 자르기, 집수리, 하우스 농작물 관리, 심지어 밥과 빨래 등 부엌일까지 그야말로 못 하는 게 없는 만능 기능공이자 농부였다. 이러했던 녀석이 한 달 전쯤, 돌연히 다니는 학교 앞에 원룸을 얻어 나가 버렸다. 겉으로는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않아 아내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역시 녀석은 수년째 집 안일하는 것에 지쳐, 가장인 아빠가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집 관리를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발칙한 이유를 아내에게 대었다고 했다.

아들이 우리 집에서 원룸으로 이사 가는 날, 이삿짐을 날라주어야 함에도 나는 놈의 말이 너무 괘씸하여 합천(경남문화예술진흥원 입주작가실)으로 가버렸다. 그곳에서 나는 녀석의 일을 까맣게 잊고 사나흘 정도 지내다 집으로 돌아오니, 집이 텅 빈 것을 새삼 확인했다. 남아 있는 아내와 막내딸은 각각 직장과 학교(학원) 생활에 너무 바빠, 녀석의 말대로 집 안팎을 관리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이어서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예초기와 낫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집 주위부터 마당까지 풀을 베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초기의 한계(시골에서 살아본 분은 다 아시겠지만 이건 30분 돌리면 끝)와 돌아서면 돋아나는 풀의 끈질긴 생명력 때문에 나는 며칠 만에 녹초가 되어버렸다. 할 수 없이 자존심을 굽힌 나는 녀석에게 주말에만 집에 와서 도와달라고 사정했건만, 아들은 결심한 바가 있는지 냉정하게 거절하였다. 그제야 나는 도시에서 직장 다닐 때 컴퓨터만 만지작거리며 체력을 키우지 않은 점과 이과보다 문과를 선호하여 기계 작동에 서툰 점, 시골로 들어와서 글 쓴답시고 모든 일을 아내와 아이에게 미룬 점, 막내 딸아이를 너무 귀하게 키워 대체인력을 마련하지 못한 점 등을 뼈아프게 후회했다.

그러던 와중에 부산에서 누님의 딸 식구가 피서를 겸해,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얼마나 반가운지 자진하여 그들을 낮에 인근에 있는 폭포로 데려가 실컷 놀게 하고, 밤에는 집 베란다에서 고기를 구워 먹였다.

조카사위는 현직 건축업자로서 아들을 능가하는 일꾼이고, 그에 딸린 식구가 네 명이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나의 간청에 나와 그들은 아침부터 베란다 근처에서 풀을 뽑고, 조카사위는 우리 집의 숙원이던 연못 속의 수초 제거 작업을 시작했다. 조카딸과 세 명의 아이는 고사리 손으로 완벽하게 임무를 완성했으며, 조카사위는 장화를 신고 낫을 든 채 연못으로 들어가 그리 어렵지 않게 그곳을 깨끗이 정돈하고 말았다.

그날 이후 나는 꼭 내가 아니더라도 일 잘하는 다른 이의 도움을 받으면 되겠다 싶어, 같은 시기에 귀촌한 이웃 마을 사람에게 제초 작업을 부탁했다(사실, 아내에겐 비밀로 했지만, 그들에게 일당을 지급하였다). 집 주위와 마당 등은 나와 조카네 식구가 해결했지만, 문제는 800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우스 주변과 뒤편, 쉼터는 마치 정글을 방불하게 하는 곳이었다.

며칠 후 이웃 마을 사람 둘이 집으로 왔다. 그들은 성능 좋은 예초기로 반나절 만에 그곳을 완벽하게 처리했다. 그날 밤 나는 연못 주위와 하우스 그리고 뒤편 쉼터의 깨끗하게 정리된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 녀석에게 보냈다. 녀석의 반응은 내 생각과는 달리 시큰둥하게 ‘군데군데 깨끗하게 베어지지 않은 풀이 많으니, 다시 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순간 나는 눈물이 나올 뻔하면서 당장 올겨울에 화목보일러에 사용할 땔감을 어떻게 구하고, 어떻게 자를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소설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동서대 디자인대학 학생, 뉴욕 페스티벌 광고제 수상
  2. 2근교산&그너머 <1179> 전남 고흥 봉래산
  3. 3부산 수영구, 홀트수영다함께돌봄센터 개소식 개최
  4. 4서머퀸 트와이스 귀환…국내·외 차트 싹쓸이
  5. 5[조재휘의 시네필] 극장 엘레지
  6. 6부산 수제맥주 탐방 <4> 갈매기 브루잉
  7. 7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659> 上德如谷
  8. 8대한적십자사 북구지구협의회, 여름김치 담그기 봉사활동 실시
  9. 9“동래야류 대중화 집중, 옛 영광 되찾을 것”
  10. 10뮤지컬 14년차 내공으로 안방 접수 “시즌 10까지 가고 싶어요”
  1. 1후반기 의장단 선출 두고 부산시의회 치열한 경쟁 예고
  2. 2김두관, 이재명 ‘2차 재난지원금’ 제안에 동의…“20만원 씩 7월 초 지급”
  3. 3북구, 맞춤형 정책 수립 위한 ‘지역통계 컨설팅’ 추진外
  4. 4변성완 “정부, 부산 엑스포 등 고려해 신공항 판단해야”
  5. 5여권, 2차 재난지원금 논의 확산
  6. 6부울경 의원 40명 중 17명 다주택자
  7. 7통합당, 기본소득 도입 공식화
  8. 8이해찬 “어려운 일 맡으셨다” 김종인 “여기 4년 전 내 자리”
  9. 9PK 잠룡 존재감 약화…15년 만에 ‘대망론’ 실종 위기
  10. 10“2차 공공기관 이전, 임기 내엔 어렵다”…이해찬 여론 뭇매
  1. 1주가지수- 2020년 6월 3일
  2. 2금융·증시 동향
  3. 3해양수산부, ‘고수온·적조 종합 대책’ 마련
  4. 4오징어, 고등어 제치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수산물’ 1위
  5. 5국립수산과학원, ‘책임운영기관’ 최우수 기관 선정돼
  6. 6해수부, 임금체불 예방 위한 법령 개정안 입법예고
  7. 7부산시 인구 밀도 ㎢ 당 4433.1명
  8. 8정부 3차 추경 역대 최대 규모 35.3조 원 편성
  9. 9“리쇼어링, 지역 특화산업 육성에 맞춘 대책이어야 성공”
  10. 10일본 수출규제 철회 사실상 거부…한국 제소 재개
  1. 1부산시 안양 36번 환자 동선 공개 국제시장·남포동·해운대·송정 관광 등
  2. 2천안 호텔 지하주차장서 화재 발생… 인명피해는 없어
  3. 3부산 강서구 지반침하로 건물 기울어…직원 대피 소동
  4. 4부산 고3 감염 후 5일째 추가 확진 없어
  5. 5강서구 금융공단서 지반침하 사고 발생…28명 긴급대피
  6. 6부산 624개교 10만 2000여 명 예정대로 3단계 등교 개학
  7. 7건설사업 투자 빌미로 17억 원 가로챈 50대 구속
  8. 8[오늘날씨] 흐리다가 낮부터 맑고 더워 … 미세먼지는 ‘보통’
  9. 9정부, “질병관리본부, ‘청’으로 승격…탄탄한 감염병 대응 체계 갖춰야”
  10. 10‘어린이 괴질’ 의심 환자 2명 당국 “모두 가와사키쇼크 증후군”
  1. 1NBA, 8월 1일 시즌 재개 추진
  2. 2‘배구 여제’ 김연경 국내 리그서 볼까
  3. 3“처벌 아닌 박수를”…FIFA, 플로이드 세리머니 이례적 지지
  4. 4유효슈팅 꼴찌 부산, 무딘 창끝에 기약없는 첫 승
  5. 5우즈 지난 1년 수입 96%가 기업 후원금
  6. 6미국 프로야구 선수들, 연봉 추가삭감 없이 팀당 114경기 제안
  7. 7흑인 과잉진압 사건에 들끓는 세계 스포츠계
  8. 8간판만 내세우는 롯데 외야수…'새싹' 키우기로 눈 돌려라
  9. 9ESPN “NC 구창모 주목…5월 활약 미국서도 드문 기록”
  10. 10MLB 구단-노조 연봉 갈등 점입가경
우리은행
21대 국회 대해부
PK 당선인의 ‘인생 입법’- 김두관·서병수 진심 인터뷰
21대 국회 대해부
PK 당선인의 ‘인생 입법’- 울산 경남 당선인 역점 법안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포구예찬
진정으로 변해가는 모두의 시간 되길
기고 [전체보기]
폭염과의 현명한 동행 /김종석
지역균형발전, 상향평준화의 길 /권오혁
기자수첩 [전체보기]
부산 고대사는 가야사? 신라사? /권용휘
더이상 ‘오거돈’ 궁금하지 않다 /이승륜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초선 의원들은 잘할 수 있을까
히포크라테스의 거울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방탄소년단 슈가와 대취타
공연예술 패러다임 바뀐다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장관 출신에게 관심을 /정옥재
수도권 일극체제와 관문공항 /송진영
도청도설 [전체보기]
민주집중제
코로나와 비만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빈자일등(貧者一燈)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김치의 딜레마
광주의 상추튀김과 쌈
사설 [전체보기]
낙동강 수질측정센터 물금 설치 적극 검토하길
민주, 2차 공공기관 이전 약속 어물쩍 넘겨선 안 된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유
재난기본소득, 정명(正名) 아니다!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코로나19와 한국의 중견국 외교
허황된 중국경사론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뒷모습을 그린 화가
권력자 마음을 꿰뚫어 본 초상
이홍 칼럼 [전체보기]
코로나가 한국에 준 새로운 기회
코로나의 도전과 한국인의 응전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또 밥만 먹는 협치?
K방역의 힘 보여주는 건 이제부터다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장미꽃과 하프와 5월
문득 찾아온 토마소 알비노니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 체인저
와인의 숙성, 사회의 성숙
특별기고 [전체보기]
‘도시국가’시대 市長의 역할 /정해문
‘코로나 19’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곽붕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홍현주의 ‘소림모옥도’
무명 천재 화가의 화조 민화
  • 낙동강수필공모전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