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에서 화해로, 또다시 적대로. 극단적 상황을 오르내리는 반전이 거듭된 탓일까. 지난 1년간의 남북관계는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중략)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지난해 9월 19일 밤,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15만 평양 시민에게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것을 역설했다. ‘희망’을 쏘아올린 것이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천지에 오른 그 이튿날은 또 얼마나 가슴이 부풀었던가. 산 중턱에 에메랄드빛 고운 물색을 뽐내며 드넓게 펼쳐진 ‘삼지연’과 장군 간백 소백 포태 등 해발 2500m가 넘는 27개의 준봉이 도열해 남북 정상의 등반을 환호하는 듯했다. 김 위원장의 남한 답방 소식이 전해지고, 제주에서 김 위원장의 한라산 초청 움직임이 일었을 땐 백두부터 한라까지 통일의 기운이 넘실대길 간절히 바라지 않았던가.
하지만 9·19 평양선언 1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그런 일들이 과연 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상황은 급변했다. 북한은 올 들어 10차례의 탄도미사일·방사포 도발을 감행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느라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미사일 실험 포기 약속도 빛이 바랜 지 오래다. 남북 간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9·19 군사합의는 그 유효성이 의문시된다. “남조선 군부 호전 세력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무력시위의 일환”이라며 미사일 도발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였기 때문이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셈이다.
지난 1년은 70년 한반도 냉전의 엄혹하고 지난한 실상을 일깨운다. 평화를 논하면서 전쟁의 구렁텅이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남북한의 모순적 행태가 그 실상이다. 국제사회에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고선 남한을 겨냥한 미사일 실험은 그만두지 않는 북한이나, 종전과 군축을 강조하면서 F-35 스텔스 따위의 전략무기를 사들이는 남한이나 모순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하긴 매한가지다.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면서 남한에 전략무기를 팔거나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파기하는 미국은 또 어떤가. 이 지독한 모순은 지난 1년여의 노력으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기가 역부족임을 웅변한다. 탈냉전의 봄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우리의 희망 찾기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