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부디 아들보다 하루만 더 살아 아들을 끝까지 보살피게 해주소서.’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아버지가 수백 ㎞를 걸으며 속으로 되뇌고 또 뇌었던 말. ‘특별한 아이와 별난 아빠’(부제 ‘느리게 자라는 아이’)는 경기도의 장애인 극단 ‘녹두’가 발달장애인 균도 씨와 그의 아버지 이진섭 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연극이다.
부산 기장군이 삶터인 이들 부자는 ‘균도의 세상걷기’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급 발달장애 아들에게 혼자 서는 법을 알려주려 아버지는 ‘걷기’를 기획했다. 2011년 10월 부산~광주 500㎞를 도보로 완주한 것을 시작으로 부산~서울 600㎞를 비롯해 지난 8년 동안 이들은 3000㎞가 넘는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아버지 진섭 씨가 걸으며 소망했던 것은 공감이다. 세상이 자신들의 이야기에 더 깊이 귀 기울여 줄 수 있다면. 장애인 혼자서도 문제없이 살아가는 사회복지망이 갖춰질 수 있다면.
지난 3일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균도 연극’을 관람했다. 반가웠지만, 더 크게 남은 것은 씁쓸한 뒷맛이다. ‘얼마나 어렵게 부산서 열리게 된 공연인데….’ 좌석들을 돌아보며 공연 내내 안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균도 가족이 세상 편견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다룬 연극은 ‘부산 사람’이 주인공이다. 그럼에도 첫 공연은 2017년 경기도 오산에서 열렸다. 경기도는 뜨거운 호응에 추가 예산을 투입해 지난해 앙코르 공연을 열었다.
부산에선 왜 이 의미 있는 연극을 볼 수 없냐는 언론 지적(국제신문 2018년 9월 11일 자 2면 보도)이 일면서, 김석준 부산교육감이 직접 나섰다. 예산 편성을 지시해 이날 균도 연극을 부산에서 첫 공연하게 만든 거다.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을 때만 해도 무척 고무됐다. 700명이 넘는 이가 관람석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던 까닭. 그러나 서운하고 불편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극 공연장에서 휴대전화를 끄는 것은 상식이다. ‘휴대전화 전원 종료’를 부탁하는 방송이 두 차례나 나왔지만, 공연 시간 내내 곳곳에서 번쩍번쩍 새어 나오는 휴대전화 조명 탓에 도저히 무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관람석에 착석한 대다수가 ‘교육자’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충격이 커졌다. 평일 오후 2시 시작된 공연에 이렇게나 많은 인원이 모인 데는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부산시교육청이 균도 연극 관람을 ‘연수’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이 재학 중인 초·중·고교의 선생님과 관리자가 이 연극을 보는 것으로 ‘장애공감 문화 조성을 위한 통합교육’이 이뤄졌다.
좋은 취지임에도 참가한 선생님은 어떻게 이리도 어수선한 것일까. 특수학생을 돌보는 교육자가 장애인을 소재로 한 연극을 관람하는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된단 말인가. 연극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안타까움은 더 컸다. 1부 공연을 마치고 퇴장한 선생님 상당수가 15분의 쉬는 시간 이후에도 다시 입장하지 않았다. 무대에서 열연하는 배우를 앞에 두고 수군거리며 잡담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잠을 청하다 연극 종료 후 배우들이 무대 인사에 나서자 화들짝 놀라 일어나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은 촌극이었다.
공연을 펼친 극단 녹두의 장애인 배우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균도 이야기는 우리 이야기라고요. 왜 우리에게 몰입하고 공감해주시지 않나요.’ 연극의 시나리오는 균도 아버지가 쓴 ‘우리 균도’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공연장 입구에 책 판매 코너가 마련됐는데, 책이 몇 권 팔렸는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책에 관심을 가지며 매대로 오는 이도 한 명 없었다고 한다. 처참했다.
연극을 기획한 목적이 많은 티켓 판매로 수익을 남기기 위함이 아닐 거다. 발달장애를 안고 사는 당사자와 가족의 어려움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공감해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시나리오가 쓰였을 테다. 억지로 시간을 때우는 이들 대신, 집중해서 연극을 보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공연장이 가득 채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평일 낮 대신 주말 저녁에 이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연극을 통해 균도 가족이 기대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 ‘신이시여, 아버지 혼자가 아닌 이 사회가 균도를 보살피게 해주소서.’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부산지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