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앞두고 한 달여 동안 계속된 논란을 통해 한국사회(한국정치)는 더는 ‘진보와 보수’라는 낡고 모호한 이분법으로 규명될 수도, 구분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참 어이없는 일이지만 보수야당이 좌파라고 욕하고, 스스로는 진보라고 주장하는 집권여당은 오로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논리로 당시 조국 후보자를 지키는 일에만 매진했고, 집권여당이 수구 적폐 세력으로 몰고, 스스로는 보수의 적자라고 주장하는 보수야당은 제 얼굴에 침 뱉는 줄도 모른 채 장관 후보자가 아니라 후보자의 가족사를 들추는 일에만 매진했다. 정치인들의 진흙탕 싸움을 통해 그렇지 않아도 애매모호한 진보와 보수라는 말은 더욱 깊은 오리무중 속으로 빠져 들고 말았다.
두 거대한 제도권 정당이 싸우는 동안 공기업인 도로공사는 대법원의 패소 판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납원 노동자의 요구를 거부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고 주장하는 문재인 정권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목숨을 건 고공농성과 단식농성에 대해 어떠한 응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부의 이런 대응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당시에도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 온 풍경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과연 누가 진보이고 보수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진보 대 보수라는 이분법, 적대적 공생을 통해 기득권의 제도정치를 공고하게 만드는 이분법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 틀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분법’을 경계해야 까닭은 이분법으로는 나(세계)를 들여다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분법으로는 ‘내 속의 너무 많은 나’를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분법이 사태의 본질을 가리고 뭉개는 도깨비방망이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분법이 우리 자신의 양심과 윤리를 증명하는 알리바이가 되거나 적을 규정하는 손쉬운 잣대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선악, 피아의 이분법은 심판하거나 척결해야 할 악(적)을 먼저 내세움으로써 선의 속성, 정의의 내용에 대한 성찰과 탐구를 막아버린다. 이분법 속에서 나는 언제나 선과 정의의 편이고, 적은 언제나 악과 불의의 편일 뿐, 무엇이 선악이고, 왜 선악으로 나눠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사라져 버린다. 세상은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흑백 TV를 시청하면서 악의 무리를 소탕하면 행복과 평화가 저절로 도래하리라는 환상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좀 더 선명하고 노골적으로, 최소한 무지개 색깔만큼의 스펙트럼이라도 펼쳐놓아야 한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포지션을 적나라하게 나누고 드러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사회는 기존의 기득권 정치에 포박된 채 변화의 가능성을 상실할 것이다.
다음처럼 ‘예시’하고자 한다. 1. 무장혁명을 통해 이 체제를 뒤엎자고 하면 ‘극좌파’하고 하자. 2. 토지의 공유화, 무상교육(보육) 및 입시교육 폐지, 무상의료, 생산수단 공유화, 사학재단 폐지, 자본주의 체제 극복 등을 내세우면 ‘좌파’라고 하자. 3. 토지소유의 제한, 무상교육 확대 및 입시교육 개혁, 복지 확대, 생산수단 사유 인정, 사학재단 개혁, 법인세 확대, 의료 혜택 확대, 노동권 보장, 선거제도 개혁 등을 내세우면 ‘중도좌파’라고 하자. 4. 토지 소유에 따른 보유세 확대, 사학재단 인정 일부 개혁, 유무상 교육 실시, 입시교육 존속, 생산수단 사유 인정,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화와 타협 중시, 상황에 따른 법인세 확대 및 인하, 불법적 노동행위 엄벌, 부분적 복지 확대를 내세우면 ‘중도’라고 하자. 5. 토지 소유에 따른 보유세 점진적 확대, 사학재단 인정, 유무상 교육 실시, 입시교육 존속, 생산수단 사유 인정, 선성장 후복지,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화와 타협 중시, 상황에 따른 법인세 확대 및 인하, 불법적 노동행위 엄벌, 공공의료와 민영의료의 공존, 공기업 민영화, 노동권 일부 제한 등을 내세우면 ‘중도우파’라고 하자. 우파와 극우파는 ‘예시’에서 생략한다. 작가·헤세이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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