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많이 소란스럽다. 하루가 다르게 사건사고가 터진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말이 너무 많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각종 매체는 온갖 말을 쏟아낸다. 그 말들 중 좋은 말보다 나쁜 말이 많다. 그 말은 신문방송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SNS를 통해 확대되고 재생산된다. 듣고 있기만 해도 지친다.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이 맞기는 맞는가 보다. 좋은 면도 있을 것이다. 사회가 활기차게 움직인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활기를 잃으면 안 된다. 심심한 천국보다 재미있는 지옥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론 우리 사회의 활력이 긍정적인 면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면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발전적이고 희망찬 활력이 아니라 퇴행적이고 소모적인 활력인 경우도 많다. 나쁜 말이 너무 많다. 나쁜 평가가 너무 많다. 차분한 이성보다 변덕스러운 감정이 넘쳐난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 ‘은근과 끈기’로 요약했다. 통찰력 있는 분석일 것이다. 그 은근과 끈기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일궈낸 기적의 원동력 중 하나였을 것이다. 반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왜 하필이면 ‘사촌’이고, 왜 하필 ‘땅’을 사며, 또 왜 하필 ‘배’가 아플까? 사촌은 대등항렬이다. 경쟁의 개념이 들어가 있다. 또 사촌은 가까운 친척이지만 나와 이해관계를 같이할 정도로 가깝지는 않다. 땅이 상징하는 바는 부(富)이고 성공일 것이다. 배가 아픈 것은 육체적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질투, 즉 심리적 반발을 의미한다. 그래서 결국, 나와 가깝지만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이 성공하면 심리적 반발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없다. 그냥 그렇다. 합리적 설명이 되지 않는다.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가슴이 따뜻해져야 하는 것이 도의 관념에는 더 부합한다. 우리 사회가 지나칠 정도로 평등 지향의 사회라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지적을 무시하지는 못하겠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평등도 아니다.
지금 벌어지는 부정적인 현상 중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현상과 비슷한 현상이 많다. 사태를 주로 경쟁의 관점에서 바라보거나 상대의 장점이 부각되면 내가 묻힌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공(功)보다는 과(過)를 부각하고, 다른 이의 성공을 축하하기보다는 실패를 고소해하는 심리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 듯한 인상도 받게 된다. 살아 있는 영웅이 없고, 존경받는 부자가 없다. 사회의 원로도 없다. 영웅의 몰락은 흥미롭고, 부자의 타락은 통쾌하다.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SNS가 발달한 시대였다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도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든 약점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작은 약점은 덮어주는 것도 미덕이다. 그래야 불세출의 영웅이 있어 젊은이들을 꿈꾸게 하고, 그래야 존경받는 원로가 있어 어두운 길을 안내해 준다.
추석을 지내고 다시 직장생활로 돌아왔다. 명절이 괴로웠던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농담 삼아 명절이 괴로운 이유가 3000개는 된다고 했다. 웃어넘기지만 씁쓸하다. 그 이유 중에는 직간접적인 경쟁의식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를 즐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주면 되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나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기 싫다. 이렇게 되면 서로 피곤해진다.
언론의 사명이 비판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현상을 비판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설이나 오피니언 코너 외에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보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사실에 대한 평가는 독자에게 맡기면 좋겠다. 너무 많은 평가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그리고 사실과 평가를 혼합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사실과 평가는 분리되어야 한다. 대개의 경우 사실과 평가가 혼합되면 둘 다 신뢰할 수 없게 된다.
변호사·법무법인 청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