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다리 응원’과 ‘아 주라’,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홈구장인 사직야구장에서 경기를 직접 보노라면 흔히 접하는 장면들이다. 봉다리 응원은 관중들이 일사불란하게 분홍색 쓰레기 봉투를 머리에 올린 채 연고 구단이 이기기를 열광하는 것을 말한다. ‘아 주라’는 파울이 된 공을 어른이 잡았을 때 주변의 아이들에게 건네라고 재촉하는 관중들의 외침이다. 이 때문에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공 소유자 가운데 열에 아홉은 이런 함성을 외면하지 못한다.
사직야구장에서는 ‘마’라는 구호도 자주 들린다. 상대 투수가 롯데 선수에게 견제구를 던질 때 어김없이 터져 나온다. “야, 이놈아. 그러지마”를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웬만해서 알아들을 방법이 없다. 부산에 들렀다 잠시 시간을 내 사직야구장에 온 외지인들은 하나 같이 다른 경기장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이런 풍경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이를 보면 부산을 야구에 죽고 야구에 사는 ‘야생야사’의 도시라 지칭한다 해도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듯하다.
몇 년 전부터는 한 외국인이 사직야구장의 명물로 떠올랐다. 2008년 한국에 와 지역 대학의 교수로 근무했던 케리 마허 씨로 10년 이상 홈 경기의 단골 관중이다. 오후에 열리는 경기 관전을 위해 강의시간을 오전으로 조정할 만큼 롯데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다. 시간이 되면 원정응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사직 할아버지’라는 별명으로 전국 야구 팬들의 유명 인사가 됐다. 그는 또 외국 치킨 회사 창업주와 닮았다고 해서 ‘KFC 할아버지’라고도 불린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아버지로 둔 마허 씨는 얼마 전 소속 대학과 계약이 끝나 취업비자가 만료됨에 따라 한국을 떠날 처지에 몰렸다. 당연히 사직야구장과도 작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정을 딱하게 여긴 구단이 손을 내밀었다. 최근 롯데는 마허 씨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했다. 그는 다음 달부터 외국인 선수의 한국 적응을 돕고 소속 팀을 해외에 알리는 일을 하게 된다.
롯데는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마저 팬으로 끌어들일 만한 매력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올해는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성적이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 까닭에 관중 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무리 골수 롯데 지지층이라도 경기력이 형편없으면 등을 돌리기 마련. 오랜 시간 롯데에 매료됐다던 마허 씨에게도 안타까운 일임이 분명할 터다. 사직야구장 만원 사례가 끊이지 않았던 호시절이 다시 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