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몽골에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해외 의료봉사를 하고 올 때마다 한국은 생활환경이 참 좋은 나라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헬 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일 정도로 한국에서 사는 것이 팍팍하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환경만 보면 대한민국이 인프라가 훌륭한 나라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치안, 위생, 보건의료 환경 등 삶에 필수적인 요소를 한국은 꽤 훌륭하게 갖추고 있다. 특히 의료 환경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림 서상균

감염병 예방을 위한 상하수도 및 체계적인 예방접종과 높은 수준의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을 통해 전 국민에 제공되고 있는 점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보건의료 환경이다.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도 국민 대부분이 수술을 받을 수 있고, 검사에 나타나지 않는 기능적 질환은 한의원에서 건강보험을 통해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으니 선진국이라고 하는 몇몇 나라보다 의료 환경은 우리가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좋은 의료 환경 속에서도 살다 보면 불가피하게 몇 가지 문제와 만난다. 쉽게 의료기관을 방문할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스스로 건강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약부터 찾게 된다. 많은 성인병은 당연히 약을 먹는 병이라고 오해해서, 약만 복용하다가 점점 더 용량을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몽골을 포함해 의료 환경이 열악한 나라의 국민은 건강의 이상이 감지될 때, 약에 의존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는다. 의료 선진국이라고 해도 의료비가 과도하게 비싸면 비(非)약물적인 방법을 먼저 고려할 수밖에 없다. 운동과 식생활, 수면시간의 확보 등 비약물적인 노력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면 초기에 약을 끊거나 아주 적은 용량의 약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원인이 없는 병은 없다. 그 병을 일으킨 바탕에는 분명히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부터 찾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의사 대부분은 치료의 시작에 앞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반드시 설명한다. 체중을 감량하고, 운동을 하며,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우선이고 음식의 질, 소화 상태, 배변 건강 등의 기본적인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이 그다음이라고…. 이렇게 다 아는 건강법을 해보지도 않고 너무 쉽게 약물요법으로 시작하는 것은 긴 인생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과외로 잠깐 올라간 성적은 결국 다시 떨어진다. 건강 역시 스스로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간 이후 외부적인 도움을 약간 받는 것이 바른 길임에 틀림없다. 처방받은 약에만 의지하면 평생 다시 건강해지기 어렵다. 사회 전반에 팽배한 이런 수동적인 건강 관리는 수명을 늘려줄지 모르겠지만 건강한 노년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변화는 나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내 생활에 무엇이 문제가 되어 병이 왔는지 찾아야 한다. 한 번 온 병이 영원히 내 곁에 마무르라는 법은 없다. 병이 찾아온 환경만 바꾸면 어느새 떠나는 것도 병이다.

건강은 공부와 많이 닮았다. 누군가 떠먹여 주는 것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에게 좋은 결과가 찾아온다. 교과서로 공부했다는 학생은 대학과 사회에 진출해서도 꾸준히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부모님의 등살에 밀려 사교육으로 성적을 쥐어짜 낸 학생은 금방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누구나 아는 방법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웃는다.

우리는 많은 외국인이 부러워하는 풍부한 의료 환경의 혜택 속에 살고 있다. 내년 1월 1일 새해 아침에 결심하기 전에 지금부터 미리 바꾸자. 변화(Change)는 기회(Chance)의 시작이다!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