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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왜 스스로 귀 막고 눈 가리나 /황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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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24 19:31:2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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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한 달 넘게 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건 거의 정신적 학대에 가깝다. 아침에 눈을 뜨면 조국 법무부 장관 얘기가 사방에 널려 있다. 집 밖에서도 조국 장관 이야기뿐이다. 조 장관의 모교인 서울대를 비롯해 다른 대학의 학생들이 조국 사퇴를 요구하면서 촛불을 들었다. 그래도 요지부동이다. 조 장관은 물론이거니와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오불관언이다.

무엇이 문 대통령을 불통의 대통령으로 만들고 있을까?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조 장관 임명이 부적절하다는 비율이 60% 가까이 되는데 왜 스스로 귀를 막고 눈을 가리는 것일까? ‘노무현 트라우마’를 들먹이며 문 대통령을 압박하는 사람들은 크게 착각하는 것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만 똘똘 뭉치면 계속 집권이 가능해야 한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우리나라 정치지형은 ‘진보 35-중도 30-보수 35’라는 사실을…. 콘크리트 지지층에 중도가 힘을 보태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조국 사태로 말미암아 현 집권세력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계층은 바로 중도다.

내년 총선까지 7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조 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지난 한 달여,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대통령선거 득표율 밑으로 떨어졌다.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내년 총선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선거라는 것은 집권세력을 심판하는 것이지, 야당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 아우성을 나 몰라라 하는 경우 국민은 결국 ‘표’로 의지를 관철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언터처블 파워’가 검찰이란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역대 정부에서 모두 검찰의 과도한 힘을 통제하려고 노력해왔다. 무소불위의 검찰을 적절히 통제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직 선진화되지 못한 법무행정을 혁신하자는 데 누가 이를 거부하겠는가. 하지만 이미 조 장관 본인의 말대로 만신창이가 된 법무부 장관이 어떤 정통성과 권위를 가지고 그 벅찬 과제를 해치울 수 있겠는가.

육참골단(肉斬骨斷), 내 살을 내어주고 적의 뼈를 꺾는다는 말이다. 2015년 당시 조국 교수가 써서 유명해진 말이다. 문재인 대표의 새정치민주연합이 내홍에 빠졌을 무렵 과감한 수술을 강조하면서 했던 말이다. 상상해보자. 만약 지난 9일 문 대통령이 조 장관을 임명하지 않고 지명을 철회했다면. 아마도 문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엄청나게 강화되었을 것이다. 조국마저 내친 문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에 누가 감히 반기를 들 수 있었을까.

불구대천(不俱戴天), 결코 병립할 수 없는 두 명제를 말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검찰 개혁과 법무 혁신은 조 장관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공언했던 ‘기회 평등-과정 공정-결과 정의’와 조 장관을 둘러싼 그 수많은 의혹은 결코 병립할 수 없다. 만약 조 장관이 ‘문재인 정치철학’을 대변하겠다고 나선다면 이야말로 국민을 너무 우습게 아는 소치에 다름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갖는 것이 있다. 정치문법이나 일반의 상식으로 봐도 지금 문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이토록 버티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무슨 심산으로 이럴까? 그러면서도 ‘참 맷집이 좋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발칙한 상상. 혹시 국민이 아우성치다가 제 풀에 지쳐 그만두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과 죽어감에 대하여’에서 ‘분노의 5단계’를 설명하고 있다. ‘부정-분노-거래-체념-수용’의 다섯 단계다. 지금 국민은 분노가 극치에 달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른 시일 내에 지금과 같은 상황을 그냥 수용하기를 기다린다면 이야말로 정말 연목구어가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은 이승만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도 권좌에서 끌어내렸던 경험이 있다.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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