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장관급 인사 8명에 대한 중폭 수준의 개각을 단행했다고 청와대가 발표한 지난달 9일 이후 한 달 보름여 지난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두 개의 시각으로 쪼개졌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숱한 논란 때문이다. 여야는 이른바 ‘조국 정국’을 맞아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우리 사회 모든 갈등의 고리는 ‘조국’으로 연결될 듯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사회적 합의나 시대정신, 민주적 시민의식이 작동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믿고 있다. 불의에 대한 역사적 판단과 심판이 존재하며 우리 사회가 건강한 민주적 사회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조국 장관의 임명 과정을 돌이켜보며 우리 사회에 과연 믿음과 신뢰가 존재하는지, 그것이 작동하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자신과 사회의 구성원을 믿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마저 든다. 매일 쏟아지는 조 장관과 가족, 친·인척 등에 관한 ‘의혹’ ‘정황’ 등 정보들을 접하면서 이런 내용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도 흐려진다.
정보가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는 정보화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가짜뉴스에 민감해지고 모든 정보의 오류에 대해 검증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조 장관의 임명과 관련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본질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내가 믿고 싶은 사실을 중심으로 이분화하여 단정 짓지는 않는가?
언제부턴가 고위공무원 등 국민의 삶의 질과 관련이 있는 공직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사회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첫째, 고위층 또는 ‘금수저’로 분류되는 우리 사회의 일부 기득권층의 불평등한 이익적 구조, 특히 자녀의 특혜적 요소를 통한 구조적 불평등에 관한 것이다. 동등한 출발선인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둘째, 재산 형성 과정의 불평등 또는 특권적 혜택 여부를 판단한다. 셋째, 공공의 사회적 정의를 위한 노력과 의지의 표명 및 법질서 준수 등을 따져본다. 이러한 사회 구성원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담은 건강한 ‘그릇’인지 여부에 따라 우리 사회는 건강한지, 아니면 불평등한지를 헤아릴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조 장관의 임명과 관련하여 이와는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국민정서법으로 표현되는 감정의 문제가 개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법적인 문제보다는 감정적인 문제가 더욱 부각되면서 본질을 흐리고 왜곡하며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대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헷갈릴 만큼 잣대가 변질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우리 사회가 심각한 흑백 논리의 양극화 트라우마 탓에 선택적 장애 또는 이분법적 선택에 매몰된 것은 아닐까. 사실 트라우마는 신체적 외상(外傷)이다. 트라우마 킷은 응급처치용 킷을 말한다. 요즘은 주로 신체적 외상보다는 심적·정신적 외상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예를 들어 어떤 사건 당시에 받았던 강력한 충격이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쳤고 그 상황이나 분위기, 이미지가 반복될 때 사건 당시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중·고교 시절 외환위기를 맞아 부모의 실직이나 회사 부도 등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뒤 미국발 금융위기 탓에 취업 대란에 맞닥뜨린 20대 중·후반 세대를 ‘트라우마 세대’로 부르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는 무엇일까? 흑백 논리, 지역주의, 좌우 진영 및 진보와 보수, 양극화 등 극단을 선택하며 동지와 적으로 나누고 구별하는 것이 아닐까? 똑같은 사회적 사실을 경험하면서도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말미암은 기억의 왜곡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적 트라우마의 극복이다. 거시적인 긍정의 힘과 서로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야 한다. 나를 믿듯 상대방도 믿고 싶은 마음을 회복해보자. 우리 사회의 건강한 사회성을 믿고 회복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결코 녹록지 않는 삶의 현장에 느긋함과 여유를 갖고 긍정의 정신을 회복할 때라고 생각된다. 지금은 복잡하고 피로한 사회 현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삶의 방향을 찾아 차분하게 자신의 정신적 근력을 키우고 대응하며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부산동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