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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봉오동과 노르망디 /신연성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29 19:26:59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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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봉오동 전투’가 많은 이의 관심을 끌었다.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다가와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격랑에 휩싸여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시대 상황이 전개되면서 무거운 사회적 담론이 더해졌다. 영화 ‘봉오동 전투’에는 명성이 있는 일본 배우들이 출연하여 일본군 추격대장과 심복 장교 그리고 세상에 눈을 떠가는 소년병 역할을 연기했다. 섬뜩하고 잔인한 일본군의 모습을 보여준 연기는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겪었을 법한 심정적인 갈등과 사회적 고통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역사는 기억이다. 기억은 살아서 숨 쉰다.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리한 에드워드 카의 명제는 일상 속에 밴 상식일 뿐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다른 한 편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전쟁 상황의 잔혹성에 대한 묘사가 그러하고, 역사의 전개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주는 점이 그러하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 가운데 ‘피의 오마하’로 불릴 만큼 치열했던 오마하 해변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5년 전 노르망디 해변은 과거에 있었던 전쟁의 야만스러운 모습과는 격이 다른 분위기 속에서 흥분과 환호에 휩싸였다. 1944년 6월 6일 감행된 상륙작전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당시 기념행사에는 주최국인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토니 블레어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국가 정상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열강 지도자들의 회동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와는 별도로 행사의 백미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전후 독일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초청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40주년과 50주년에도 헬무트 콜 총리가 참석하고자 하는 의사를 타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슈뢰더 총리는 다시 한번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고 이를 계기로 유럽은 진정성 있는 통합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영화 봉오동 전투가 전하는 메시지가 역사에 대한 기억이라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남기는 여운은 역사에 대한 성찰이다. 이러한 구분은 두 영화의 제작을 가능하게 한 시대상황의 차이에 있다. 한일 관계는 위태롭고 불안하다.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서 비롯된 갈등에 일본은 무역보복이라는 수단을 동원했다. 이어 양국은 스스로 출구를 막고 문제를 키우는 외교를 거리낌 없이 전개하고 있다. 그 대가는 혹독하다. 양국의 경제가 감당해야 할 타격은 물론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 체제에 대한 우려마저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무역보복과 WTO 제소, 한일 군사기밀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 등 대결 국면이 확대되고 있다. 역사의 용틀임은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다. 더욱더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기 전에 포괄적인 해결을 위한 결단이 절실하다.

지난날 한일 양국은 역사 인식의 괴리라고 하는 버거운 도전을 마주하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문호 개방을 천명한 이래 두 나라 국민 사이의 교류가 크게 확대되었으며, 역사 문제에 있어서도 두 나라의 관계사를 공동으로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개발하려는 의미 있는 노력도 있었다. 불행하게도 과거사에 대한 대화는 진전이 더딜 뿐만 아니라, 조그마한 걸림돌에 기왕의 성과마저 무위로 돌아가고 마는 매우 어렵고 섬세한 작업이다. 역사라는 생명체가 가진 속성이 이러한 만큼 과거사 문제와 일상의 과제는 구분하여 냉철한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역사와 현실의 혼돈은 아픈 기억에 생채기를 더하고 미래를 더욱 어둡고 꼬인 미로로 밀어 넣을 뿐이다.
세계화가 최고조에 달한 오늘날의 외교에서 개별 국가가 각자의 길을 간다는 자세는 하지하책이다. 하물며 한일관계에 있어서는 그러한 선택지가 주어져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양국은 편협한 안목으로 엄중한 현실을 오도할 것이 아니라, 노르망디 해변의 장관과 같은 시대적 성취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전 부산시 국제관계대사·전 주요르단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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