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6일은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이 되는 날로서, 얼마 전 비로소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이 항쟁은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유신독재체제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경찰과 군대의 진압에 의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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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
기실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시민 스스로의 직접행동으로 일궈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에 획을 긋는 주요한 항쟁과 사건들이 평범한 시민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중 많은 움직임은 광장과 길에서 행해졌다.
많은 이가 폭력 체포 구금 등의 위험과 고문 등 실제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용감하게게 나섰던 것은 우리 공통의 사회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고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거나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더 괜찮은 세상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어 희망을 접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한 채 당연한 것처럼 누리고 있는 많은 것은 그렇게 앞서 살았던 이들의 염원과 실천 덕분이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확인이 어렵고 대부분은 이름을 남기지도 않았겠지만 숱한 보통 사람이 제대로 된 사회를 바라며 애쓴 것은 틀림없다. 그러면서 조금씩 우리 사회의 상식 수준을 진작시켰을 것이다.
그처럼 사회의 많은 구성원이 오래도록 힘써 왔기에, 사회의 각종 제도들 역시 개선을 위한 단계를 밟아왔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장을 위해서는 관련 체계 자체와 세부기관들을 적절하게 확보하고 바람직하게 운영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기에 실제의 흐름 역시 전체적으로는 그렇게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모든 구체적인 제도가 사회적 의식과 요구에 걸맞게 진보적인 모습과 내용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순 없다. 개개 조직들은 나름대로의 논리와 양식에 바탕을 두고 일종의 상대적 독립성을 갖고 작동하는지라 변화가 쉽지 않은 법이다. 어떤 방향으로 어떤 부분이 바뀌어야 할지에 관한 사유를 자체적으로 지니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어떤 기관의 발전적 존속을 위해서는 다른 열린 관점과 정보들이 실은 절실한 법인데, 실상에서는 외부 환경에 그런 기회가 적지 않게 있더라도 그를 자원으로 온당히 대접하고 충분히 활용하기보다는 반발하고 거부하는 것이 좀 더 흔한 반응인 것 같다.
그렇게 특정 제도가 어리석게도 조직보위에 더 중점을 두는 탓에 시민이 보내는 비판적인 지지를 아우르지 못하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거늘, 때로는 성찰과 반성은커녕 오히려 변화를 요청하는 목소리들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행태마저 보이기도 한다. 그와 같은 작태가 감히 가능했던 것은 우리 시민이 존중받지 못하면서도 깊이 새기지 않고 잊어주거나 여전히 인간성 자체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똑같이 품위 없이 굴지 않고 관대하게 대해 왔기 때문인데, 그 마음을 뭉개는 짓이 언제까지나 용서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아무래도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고 종종 그리 집행하는 측은 제도 쪽이기에, 국가기관에 속한 이가 시민을 비하하거나 직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품격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도하게 굴더라도 그에 대해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부당함과 졸렬함을 얘기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는 없을 수 있다.
그래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저런 압력과 시련 속에서도 세계를 사랑하고 창조해 온 만큼, 우리가 제도를 그저 그대로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제도의 이름과 힘이 그 이유가 어떻든 특정인을 모독하는 데 쓰이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하자가 없는 작동이더라도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며, 이를 좌시한다면 그것은 인간다운 상식을 구성해 온 우리 스스로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그러니 제도가 제대로 품위를 갖추도록 거리에서 온라인공간에서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관심은 이어질 것이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