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양돈산업이 고사될 위기에 처했다. 치사율 100%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때문이다. 세계 사육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에서도 발병한 뒤 북한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ASF가 발생했다. 중국에서는 1억 마리가 넘는 돼지를 살처분하다 보니 돼지고기가 모자라 1인당 소비량을 제한하기까지 했다. 치료약과 백신이 없어서 이 병에 걸린 돼지는 모두 살처분된다. 정부는 규정을 강화해 ASF가 발생한 농가 반경 3㎞ 이내 돼지를 모두 살처분하고 있다. 2일 현재 10만 마리가 넘는 돼지가 땅 속에 묻혔다. 지난달 17일 경기 파주에서 발병한 후 이날 현재 경기와 인천 일대 11곳의 농가에서 ASF가 발생했다.
문제는 돼지만 죽는 게 아니라 돼지를 키우는 사람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전국에서 돼지를 키우는 농가는 6300여 가구에 달한다. 이곳에서 1120만 마리를 사육한다고 한다. 산업화된 양돈의 국내 생산액은 총 7조 원에 달한다. 전후방 연관 효과를 따지면 수십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돼지열병에 걸려 돼지가 몰살되면 이들 농가의 생계가 막막해진다.
1921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처음 보고된 이 병은 아직 백신조차 없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돼지는 손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빨리 죽는다. 현재까지 살처분만이 유일한 확산 방지책이다.
걸리고 나서 후회하는 것보다 걸리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동안 북한에서 발병하면서 휴전선 일대 지역 농가에 ASF가 전염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됐다. 돼지에 잔반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도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2007년 동유럽과 러시아를 공포에 떨게 한 조지아 발병 사례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포티 항구에 정박한 선박에서 생긴 잔반이다. 영농단체는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정부는 잔반 금지를 반대하는 농민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며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말았다. 양돈인은 북한 접경 지역 중 위험 구간을 조사하고 이에 맞는 대책을 세워달라고 했으나 허사였다.
정부가 전파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것은 더 심각하다. 한때 휴전선 일대 멧돼지가 ASF를 옮긴 주범으로 몰렸다가 이제는 파리와 모기까지 거론된다. 일부에서는 사람의 전파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니 효과적인 대응책이 나오지 못한다. 불안감만 커진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2주가 넘었다. 스페인에서는 돼지열병을 없애는 데 35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러니 방역 대책을 지휘하는 총리마저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이낙연 총리는 “하루하루가 몹시 긴장되고 거의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어야 될 정도다”고 털어놓았다. 밤잠을 못 자는 사람이 어디 총리뿐일까. 6300여 가구에 이르는 양돈 농가는 매일 불안에 떨며 지옥과 같은 날을 보내고 있다. ASF 발병지와 멀리 떨어진 일부 농가에서는 키우는 돼지를 조기에 출하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사례를 주의 깊게 살펴 대책을 세우라고 제언했다. 특히 지난해 8월 야생 멧돼지에서 발병했지만 사육돼지에서는 아직 발생하지 않는 벨기에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제시한다. 중앙과 지방 정부가 역할을 나눠 사육돼지와 멧돼지 방역을 담당한다. 잔반 급여를 중단하고 농장과 국경지역에 울타리를 설치해 멧돼지의 이동과 접근을 막았다. 멧돼지를 접촉하는 사람은 72시간 내 사육돼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같은 노력에 멧돼지 800마리가 감염됐지만 사육돼지에서는 아직 발병하지 않고 있다. 야생 멧돼지는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어도 죽지 않는 경우가 있다. 멧돼지를 통한 전파를 막기 힘든 이유다.
ASF는 잠복 기간이 길어 스페인처럼 조기에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도 시급하다. 스페인에서는 살처분해도 충분하게 보상이 이뤄져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지금처럼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ASF 확산을 저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조기 신고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