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부산지역 교육계 인사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중학교의 등급을 영어 성적으로 나눈다고 했다. 기준은 교육청이 시내 전 중학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학력평가의 영어 성적 평균이었다. 수학 등이 아닌 영어를 기준으로 삼은 것은 집안 형편이 성적에 가장 잘 반영된 과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흔히 외국어는 과외나 어학연수 등 투자한 만큼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등급을 나누는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그 나름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겼을 법하다. 교육적이냐, 비교육적이냐 하는 문제는 제쳐두고. 외국어는 학생의 재능만으로 주변 환경의 차이를 극복하기가 수학 등 다른 과목보다 힘든 게 현실이 아닌가. 이런 식의 학교 등급 평가가 실제 이뤄졌는지 여부는 확인해 주는 관계자가 없어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부모의 재력이 자녀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각종 통계로 증명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식으로 학교 등급을 나누었을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학생 성적에 미치는 주변 환경의 중요성을 표현한 또 다른 이야기다. 대학 입시 성공의 조건으로 ‘학생의 재능,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회자됐다. 대학 입시 전형이 수능 위주의 정시와 스펙 중심의 수시에다 학교별로 성적 반영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나온 우스갯소리다.
이 말도 수시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면서 바뀌고 있다. 좀 많이 과장해서 말하면 정보력과 재력만 남을 판이다. 이제 학생의 재능이 부족해도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는 시절이 됐다. 이른바 ‘깜깜이·금수저 전형’이라고 불리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덕이다. 스펙 관리로 부족한 수능 성적을 보완할 길이 생긴 것이다. 물론 복잡한 학종을 전공(?)한 일명 ‘입시 코디’로 불리는 과외 선생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서울 강남의 경우 교습비가 월 600만 원을 넘기도 한다는 국정감사 자료도 있으니 넉넉하지 못한 학생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최근 교육계에서는 정시 확대, 수시 축소를 두고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논란으로 교육 기회의 불평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를 두고 입시제도를 둘러싼 계층 간의 투쟁으로 해석하는 보고서도 나왔다. 최상위층은 수시를, 상위층은 정시를 지지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 역시 재력이 반영된 선호도 차이다. 한편으로는 대학 입시 전형별 계층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