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든 받든 언제나 기분 좋은 ‘선물’과 그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은 ‘저주’의 말은 모두 마음이 정한다. 마음의 죄는 겉으로 보이지 않아 자주 선을 능멸한다. 몽골의 호수 4300개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도 우리는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누가 벌을 주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세 치 혀로는 자주, 마음으로는 늘 죄를 짓고 산다. 죄에 대한 벌이 충분히 합당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더 자주 선을 무시하게 된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반경 100㎞ 너머에서도 껍질 벗긴 나무를 장작으로 삼았다. 하지만 나무의 한가운데인 ‘수’ 부분도 방사능 오염으로부터는 안전하지가 않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버리는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어 집을 지었다.
살아가면서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선택을 위한 번뇌는 성가시지만 인간이 누리는 특권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스로를 돌아보면 아는 것을 제대로 실천하며 살아왔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편법과 불법을 피하기 위해서는 홀로 다 잃는 특별한 세계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불행했던 시간들은 죄의식을 덜 갖도록 만들었다. 우리 모두의 비극이 그곳에 있다. 우리는 처절하게 성찰했던가. 그랬다면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단지 값이 싸다는 이유로 폐기처분될 값싼 방사능 우유를 사들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수입 농산물에 규제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방사능 물질에 절인 원료로 빵과 라면, 국수며 과자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돈에 영혼을 판, 악마와 거래를 하는 저주받을 죄악임을 알면서도 그 누구도 이 참혹한 범죄에 대해 알리고 반성한 적조차 없었다. 그랬다면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세월호의 비극이나 5만6000건의 개인 정보를 유출시키는 범죄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원전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데도 수명 다한 원전을 폐쇄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다.
돈은 잘 나누면 거름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제대로 쓰지 못하면 악취만 난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서로의 탓만 하고 저주를 퍼부으며 반목과 분열로 사회적 비용 300조 원을 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폐지 165㎏을 모아야 겨우 만 원을 얻는 현실 또한 양심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빙하가 녹아서 태평양의 섬나라가 가라앉고 있어도 밤새 에어컨을 틀어서 그들의 삶의 터전을 없애버리고, 원전에서 배출되는 뜨거운 물로 수온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가 아열대기후가 되고, 수목 벨트가 변화하는 것 또한 과밀 원전으로 인해 급상승한 수온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썩어 없어지는 데 500년 걸리는 비닐봉지는 여전히 과용하고 있으며 너무 자주 술에 취하고 분노와 미움에 취한다.
행복의 여신은 언제나 짓궂다. 유혹하고 조롱해서 우리를 불행 속으로 빠뜨리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정도(正道)를 지키고 거룩함을 지켜내기란 정말 어렵다. 국민을 위해 희생만 해야 할 정치인들조차 정치 만족도가 90%에 육박하는 나라의 의원들보다 5배나 많은 세비를 받고도 개인의 유익만을 구할 뿐 저주와 망발에만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에게 시간과 재화가 그리도 남아도는지 묻고 싶다. 북서계절풍이 불어오면 우리는 중국발 미세먼지로 고통받을 것이다. 피해 보상이라도 제대로 받고, 치명적인 악재인 미세먼지의 근원적인 해결을 하려면 머리를 맞대고 사력을 다해도 1분 1초가 아까운 시점이다. 책임 있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국민을 위해, 어떤 복된 선물을 안겨줄까 고민하며 헌신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까.
삶의 아름다움은 가슴이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잡으라고 기회의 신 카이로스의 앞머리는 무성하다. 어깨와 발에 날개가 달려 있는 것은 놓치기 쉬워서이고, 뒷머리에 털이 없는 것은 지나가버리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적반하장을 영혼 충족으로 착각한 아베 정권이 대동단결하여 한국을 공격하는 이 중차대한 시점에도 우리는 사분오열로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유사 이래 늘 그래왔듯이 이제 우리는 또다시 스스로가 희망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일본을 위해 우리만이 일방적으로 소비해온 7조 원에 육박하는 재화에 대한 성찰로 이제는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야 한다. 저주의 말만을 쏟을 그 에너지로 어떤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만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동의대 교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