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공공기관이란 단어는 어김없이 방만경영이란 말로 이어진다. 때만 되면 도덕적 해이니, 고액 연봉이니, 낙하산 인사니 하며 난타당하는 동네북 신세다. 중앙정부 산하든, 지자체 산하든 가리지 않는다. 해당 기관이나 직원들로선 무슨 커다란 죄를 지은 집단처럼 도매금으로 취급되니 억울할 법도 하다. 물론 모두 그렇지 않다는 건 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위탁받은 사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기관이 왜 없겠나. 그럼에도 여전히 상당수 공공기관이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부산만 해도 시 산하에 공사·공단과 출자·출연기관 등 25개의 공공기관이 있다. 근무 인력만 6000여 명이다. 이들 기관 또한 방만경영이란 말에서 자유롭지 않다. 더구나 25개라는 숫자가 전국 지자체 중 최다라는 딱지 또한 늘 따라다닌다. 사실 제 역할만 한다면 전국에서 산하 공공기관이 제일 많은들 무슨 상관이겠나. 숫자의 많고 적음이 방만경영 여부와는 직접 연관이 없는 까닭이다. 문제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부산시에서도 산하 공공기관 혁신은 늘 주요 화두였다. 오거돈 시장만 해도 취임 초 통폐합 등 구조조정 의지를 강하게 밝힌 바 있다.
오 시장이 이처럼 의지를 피력했으니 후속조치가 없을 수 없다. 시는 이를 위해 최근 공공기관 효율성을 높이고 공공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한 ‘1단계 혁신 로드맵’을 발표했다. 조직·기능 조정, 사업예산 재구조화, 재무구조 개선, 급여·회계 제도 개선 등 4개 분야 225개 세부 실행과제로 구성됐다. 조직의 군살을 빼고 예산을 과감하게 줄이겠다는 이야기다. 이런 로드맵을 통해 장기적으로 최소 1개에서 최대 3개까지 공공기관 수를 줄이겠다는 게 시의 복안이라고 한다.
지난 8개월간 공공기관 경영진단을 통해 도출한 개선안이라니 나름의 고민이 없지 않았겠다. 무려 225개나 달할 정도로 세부 실행과제가 많은 걸 보면, 그간 이들 공공기관이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운영돼 왔는지 짐작할 만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식탁은 풍성한데 제대로 먹을 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이는 아마도 가장 핵심인 공공기관 통폐합 의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탓이 아닐까 싶다. 통폐합 대상을 구체화하지도 않은 채 최대 3개까지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을 쓴 로드맵이란 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문이다.
시는 조직·기능 통폐합과 관련한 나머지 실행과제는 내·외부 우려를 해소하고, 행정 신뢰도를 위해 2단계 추진 방안으로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공론 절차, 연구용역 기간, 기관장 임기 보장 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이야기다. 물론 공공기관 통폐합이라는 게 무 자르듯 단칼에 이뤄질 간단한 작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의 복안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1단계 로드맵조차 오 시장이 취임한 후 1년이 넘어서야 나왔다. 그간 경영진단 등의 기간이 필요했다고는 하지만, 또다시 이런저런 우려사항을 고려해야 한다면 언제쯤 2단계 작업이 추진될지 솔직히 기약하기 어렵다.
이처럼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건, 전임 서병수 시장 시절의 산하 공공기관 구조조정 실패를 답습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당시 서 시장 또한 취임 1년여를 지나 공공기관 통폐합 등 고강도 혁신계획을 발표했다. 경영 악화가 심각한데도 혁신 의지가 부족하거나 개선 효과가 미흡한 공공기관 2개 이상을 구조조정하겠다는 방침도 여기에 포함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획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고, 이는 결국 고스란히 오 시장의 몫으로 남았다.
전임 시장 실패가 현 시장의 실패로 이어지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공기관 구조조정이 말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취임 초부터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흐지부지 될 수밖에 없다. 우선 해당 기관의 조직적 저항이 만많찮다. 이를 시행하는 공무원 조직 또한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산하 공공기관은 퇴임 공무원의 또다른 밥줄이어서다. 취임 초 단체장 뜻에 맞춰 시늉만 하다 시간만 보내면 결국 유야무야 되는 걸 봐온 터다. 이번 시의 1단계 로드맵도 그 전철을 밟기 십상이다.
부산시는 공공기관 통폐합 의지를 밝히면서도 일부 공공기관 추가 설립을 추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자체 중 최다 숫자라는 게 문제는 아니듯, 꼭 필요한 공공기관이라면 더 못 세울 이유도 없다. 다만 문제 투성이인 기존 공공기관에 과감한 메스를 대지 않고서야 명분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화려하고 많은 과제를 나열한 로드맵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오 시장에게 남은 기간은 그리 많지 않다. 결코 좌고우면할 일이 아니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