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BIFF)는 1996년 중구 남포동에서 태어났다. 항구도시 부산의 또 다른 바다인 ‘영화의 바다’였다. 그 바다는 퍼덕이는 자갈치 활어의 날쌘 몸짓 만큼이나 싱그러웠다. 하지만 그 바다는 2011년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으로 BIFF의 거점을 옮기면서 자취를 감췄다. ‘남포동 향수병’이 생긴 건 그때부터였다. 실향의 세월이 길어질수록 그 병은 깊어졌다. 그랬던 BIFF가 24세 성년이 되어 고향에서 재도약의 신호탄을 쏘았다. ‘BIFF의 르네상스’다.
BIFF 르네상스의 대표적 표징은 나이를 잊은 여배우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영화의 전설 중 한 명인 김지미(78)는 17세 때인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보다 40년 늦은 1997년 영화 ‘접속’으로 데뷔한 전도연(46)과 지난 4일 비프광장 야외무대에서 한자리에 앉아 ‘한국영화 100년’을 이야기했다. ‘황혼열차’와 ‘접속’의 시대정신은 다르지만, 영화를 통해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목적은 같았다. 김지미는 그것을 “배우는 얼굴이 아닌 연기로 말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영화제 안의 영화제라고 일컫는 ‘커뮤니티 BIFF’에서도 그런 진실·미학 찾기를 볼 수 있었다. ‘커뮤니티 BIFF’ 공동위원장인 배우 김의성과 조우진이 같은 날 남포동 롯데시네마 대영에서 펼친 관객과의 대화가 그 하나다. 그들은 권언유착의 기득권 세계를 그린 영화 ‘내부자들’을 시민들과 함께 보며 ‘그들만의 리그’가 빚어내는 불평등·불공정·불의 사회에 대해 토론했다. 배우와 관객이란 개별적 처지를 떠나 시민이란 공통적 눈높이에서 만나 어우러진 시간이었다. BIFF는 그렇게 진화하고 있었다.
그것은 과거(남포동 시절)와 현재(해운대 시절)의 대화였다. 어버이 남포동과 그 자녀인 해운대는 ‘영화의 바다’에서 푸른 대화를 나눈 셈이다. 난바다의 격랑을 뚫고 마침내 심산유곡의 고향에 도달한 연어처럼, 8년 세월을 거슬러 남포동을 다시 찾은 BIFF에게서도 자갈치의 싱그러움은 여전했다. 그래서 BIFF는 영원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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