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에 세계제국을 건설한 몽골은 1270년 고려를 정복한 후 고려왕조를 제국 내에서 유일하게 유지시키고 쿠빌라이 황제는 고려 충렬왕을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부마로 삼는 특별대우를 하였다. 몽골이 고려를 특별히 대우한 이유가 무엇일까?
현재 한국의 국사학계는 몽골에 대한 두 가지의 잘못된 통설을 유지하고 있다. 첫째는 몽골족이 원래 존재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한민족이 몽골 북부에서 한반도로 건너왔다는 것이다.
몽골부족은 10세기 이전에 역사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10세기에 몽골의 이름이 역사에 나타난다. 칭기즈칸이 1162년 태어날 당시 몽골고원에서는 타타르부족, 케레이트부족, 나이만부족, 메르키트부족, 몽골부족 등 5개의 큰 부족이 있었고 코리 투마트부족, 오랑카이부족 등 작은 부족이 있었다. 타타르부족, 나이만부족, 케레이트부족이 투르크족이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메르키트부족, 몽골부족, 코리투마트부족, 오랑카이부족은 인종학적으로 어떤 종족인가. 현재 동부 시베리아의 남쪽에 사는 인종들은 모두 퉁구스족으로 분류되고 있다. 한민족도 퉁구스족이며 언어학적으로 알타이어족이다.
메르키트족의 명칭은 말갈에서 나온 것 같다. 몽골 현지를 답사한 한국의 탐사가들이 메르키트족이 살던 지역에서 나온 발해의 유적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발해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건국한 나라이다. 고구려족이나 말갈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부여족에서 나왔다. 고구려는 “우리는 부여에서 나왔다”고 명언하고 있었다. 고구려는 고오리 즉 성읍(城邑)을 뜻하는 말이고, 말갈은 말을 키우는 마을을 뜻하는 지방 행정군사조직이라는 학설도 있다.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저서 ‘총, 균, 쇠’에서 고구려 언어가 현대 일본에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일본어의 고오리는 고을을 뜻하며 고구려어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칭기즈칸 시대에 쓰인 몽골의 정사인 ‘몽골비사’에서 칭기즈칸이 자신의 처인 부르테를 납치한 메르키트부족을 공격하려 할 때 메르키트부족이 화해를 청하며 “우리는 태생이 하나가 아닌가. 우리는 가까운 혈족이 아닌가”라고 탄원하는 장면이 있다. 그렇다면 몽골부족도 말갈에서 나온 명칭일 가능성이 크다. 칭기즈칸이 몽골고원을 통일하고 1206년 국호를 ‘야케 몽골 을루스’로 선포하면서 몽골고원에 거주하는 모든 부족을 몽골인으로 부르면서 몽골민족이 탄생한 것이지 원래 몽골민족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모든 몽골인의 어머니’인 알란 고와는 칭기즈칸의 10대 선조인데 코리 투마트족이었다. 중국 변방 민족은 고려를 코리라고 부르는데 코리 투마트는 고구려에서 나온 명칭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알란 고와의 ‘고와’는 우리말로 예쁘다는 뜻인데 ‘알란 미인’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투마트는 두만강을 뜻하며 주몽은 투마트를 한자어로 만든 것이다. 알란 고와와 전설의 남자와의 3명의 아들을 몽골의 ‘황금씨족’이라고 하는데 칭기즈칸은 막내 보돈차르의 9대손이다.
몽골부족이 10세기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요 나라에 의한 발해의 멸망과 관련이 있다. ‘요사(遼史)’에 의하면 발해 멸망 후 발해 유민의 반란이 심해지자 요 나라는 발해민을 오늘의 몽골 남부인 시라무렌강, 랴오하강 등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강제 이주된 발해인의 탈주가 계속되었다. 몽골의 학자 중 몽골이 말갈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으며 한국에서도 이런 주장을 하는 몽골 전문가도 있다. 알란 고와의 코리 투마트부족이 고구려 발해의 후예라면 칭기즈칸도 고구려 발해의 후예일 것이다. 따라서 몽골에서 한민족이 온 것이 아니라 한민족이 몽골로 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200만 몽골인이 세계제국을 세운 비결은 자유와 포용이었다. 칭기즈칸은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자유를 주었고 적국의 인재와 기술을 받아들였다. 몽골과 같은 DNA를 가진 한민족은 자유를 주어야 능력을 발휘하는 민족이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국력 차이는 자유에서 비롯한 것이다. 자유를 억제하는 제도는 대한민국을 조선왕조와 같이 정체시킬 것이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