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지난 8일) 퇴근하며 습관적으로 집 우편함에 손을 넣으니 뭔가 잡혔다. 발신인은 행정안전부, 봉투를 뜯으니 ‘1979~2019 우리들의 부마’라고 쓴 큰 글씨가 보였다. 내용은 이랬다.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다음과 같이 거행하오니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행정안전부 장관 진영’. 가족 중 한 명 앞으로 발송된 초청장이었다.
밀려오는 뿌듯함에 초청장을 펴놓고 사진도 찍었다. 마침 이날 ‘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2’ 기획 시리즈의 마지막 기사, 남포동 BIFF광장에서 열린 ‘리멤버 부마’ 토크쇼 기사를 출고했다. 10월 16일이 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국제신문은 지난해 ‘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그리고 올 들어 9일까지 ‘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2’ 기획 시리즈를 보도했다. 작년 첫 기획은 부마항쟁을 기억하고 기념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그저 평범했던 부산 마산의 시민이 군부 독재를 끝내고 우리나라 민주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지만, 이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에 부마항쟁이 발발한 10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고 촉구했다. 시민사회가 응답했다. 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대규모 서명운동이 펼쳐졌다.
올해 2차 기획은 한 발 더 나아갔다. 홀대받은 진실을 규명하고자 했다. 1979년 10월 거리에서 피 흘리며 절규했던 ‘그때 그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항쟁의 주역을 세상으로 불러내 그들이 증언하는 날것 그대로의 진실을 들었다. 증언을 토대로 항쟁을 재구성했다. 군부가 비밀리에 작성한 문서를 발굴해 알려지지 않았던 충격적인 내용도 지면에 썼다. 자발적으로 항쟁에 나선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하고, 시위를 진압하려 공격용 헬기를 준비하고, 시위대 틈에 보안사령부의 사복 공작조가 침투하고, 군부의 ‘통치자금’으로 추정되는 거액의 대통령 하사금을 계엄군에 뿌린 사실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부마에서 ‘훈련’된 시위 진압 방식은 7개월여 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신군부가 그대로 실행했다.
보고서를 ‘다시 써야’ 할 이유는 분명히 있다. 흔히 ‘역사’를 ‘사건’이면서 ‘기록’이라고 한다. 부마항쟁의 역사는 지난 40년간 상당히 왜곡됐고, 감춰졌다. 1979년 10월 일어난 ‘사건’을 사실대로 ‘기록’하지 않았다. 조작하거나 꼭꼭 숨겼다.
이제라도 ‘사건’과 ‘기록’의 간극을 좁히고, 진실을 밝히려면 보고서를 다시 써야 한다. 부산 마산의 거리에 몰려나와 “유신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던 시민은 여전히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괴로워한다. ‘빨갱이’ 낙인이 족쇄가 돼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는 시민도 있다. “그 이후 내 인생이 전부 꼬였다” “지금도 10월이 되면 잠을 못 잔다” “시력을 잃어 사람을 못 알아본다” 등이 실태 조사에서 나온 진술이다. 국가기념일 지정으로 끝내선 안 된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부마항쟁의 역사를 다시 정확히 기록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을 때까지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관련자의 명예도 회복해야 한다. 할 일이 많다.
오는 16일 부마항쟁 40주년 기념식은 정부 주관으로 거행된다. 지금까지 부산과 마산이 따로 기념하던 것을 하나로 합친 의미도 크다. 5·18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광주 옛 전남도청 앞에서도 행사가 열린다. 기념식에선 국제신문 기자로 항쟁의 대열에 섰던 고(故) 임수생 시인의 시 ‘거대한 불꽃 부마민주항쟁’이 낭송된다.
‘1979년 10월 16일 / 마침내 불꽃은 치솟았다 (중략) 총칼이 번뜩이며 불을 토했다 / 장갑차가 시위대를 깔고 뭉갰다 (중략) 깃발을 들고 물결치며 행진하던 꽃들은 / 짓밟히며 땅 위에 피를 쏟았다 (중략) 우리들은 우리들의 투쟁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중략) 민중의 절대한 힘을 하나하나 찾아내 /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남겨야 한다. 부산 마산 시민의 절규와 희생을 제대로 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래서 보고서를 다시 써야 한다. 국제신문이 ‘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완결판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잊지 말고 기억하자. 리멤버, 우리들의 부마!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