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은 유전된다”고 하면 의아하게 여길 터이다. 하지만 노벨상은 엄연히 유전되고 있다. 생물학적 유전이 아닌 교육에 의한 가족적, 사회적 유전이다. 가족적 유전의 대표적인 사례는 퀴리 가문이다. 1903년 마리 퀴리(1867~1934)와 피에르 퀴리(1859~1906) 부부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으로 시작된 퀴리 가문의 노벨상 수상 행렬은 1911년 마리의 노벨화학상, 1935년 마리의 첫딸 이렌 졸리오 퀴리(1897~1956)와 프레데릭 졸리오(1900~1958)부부의 노벨화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마리의 둘째 사위인 헨리 라뷔스가 1965년 유엔아동기금 사무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조직을 대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까지 합치면 5명이 4번 수상한 셈이다.
사회적 유전의 전형은 일본에서 볼 수 있다. 1949년 소립자 이론의 하나인 ‘중간자 이론’으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노벨상(물리학상)을 받은 유카와 히데키(1907~1981)와 그의 이론을 보완한 사카타 쇼이치(1911~1970)가 중심인물이다. 사카타는 1946년 나고야대학에 연구실을 열고 학문의 자유와 평등을 담은 ‘물리학교실 헌장’을 제정했다. ‘연구의 주체는 교실 회의를 구성하는 연구원으로, 대학원생급 이상의 연구원은 모두 대등한 자격을 지닌다’는 게 골자다. 그 결과 사카타의 제자인 마스카와 도시히데와 고바야시 마코토, 난부 요시치로가 ‘대칭성 깨짐’을 수학적으로 정리해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유카와와 사카타는 1962년 핵무기 근절을 위한 ‘교토 과학자회의’도 열었다. 이는 일본 61~63대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1901~1975)가 핵무기를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반입을 허용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으로 1974년 노벨평화상을 받는 밑거름이 됐다.
일본 노벨상의 사회적 유전은 화학계에도 존재한다. 리튬전지를 상용화해 올해 노벨화학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요시노 아키라의 연구 계기는 200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시라카와 히데키의 전기 통하는 플라스틱 발견이었다. 시라카와 역시 1981년 일본 최초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후쿠이 겐이치(1918~1998)가 설립한 기초화학 연구소에서 후쿠이와 함께 연구해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바탕에는 민주·평등·평화의 정신이 흐른다. 이것이 진정한 사회적 유전이다.
우리는 어떤가.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기회의 불평등, 과정의 불공정, 결과의 부정의’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선 청년들을 보면서도 당리당략의 정쟁만 일삼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