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기묘사림 한전법 균전법 /강명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0-13 19:38:13
  •  |   본지 2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518년(조선 중종 13년) 2월 11일 장령 유옥(柳沃)은 어전에서 토지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폐단의 해결책으로 모든 백성에게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는 법, 곧 균전법(均田法)을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노비의 소유 상한선까지 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종은 균전법에 대한 주장은 과거 있었으나 시행된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반대한 것이었다.

같은 해 5월 27일 사섬시 주부 박수량(朴遂良) 역시 빈부 격차가 너무나 심하므로 균전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한 고을에 수백 결(結)의 땅을 소유한 지주가 있는 현실을 방치할 경우 5, 6년이 지나면 그 고을의 토지는 불과 5, 6명의 소유가 되고 만다는 것이었다. 이날 영사(領事) 신용개(申用漑)는 박수량의 균전법에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소수 지주의 토지 독점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 없이 동의했다.

같은 날 저녁 어전에서 기사관 유성춘(柳成春)이 다시 균전제의 시행을 역설했다. 자신이 목도한 바에 의하면 순천(順天)의 지주들은 많으면 1만 석, 적어도 5000, 6000석의 곡식을 축적하고 있었으며, 파종하는 종자 역시 200여 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 고을의 경작지는 2, 3인의 소유가 되어 있고 나머지 사람은 경작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유성춘은 지주의 원망은 있겠지만, 백성이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논리로 균전법의 시행을 촉구했다. 당연히 중종은 또 거부했다. 이에 참찬관 권벌이 시행할 것을 거듭 요청하자, 중종은 대신과 상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유성춘이 균전제를 주장한 그 다음 날인 5월 28일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은 토지 소유의 상한선을 50결로 하고, 상한선을 넘는 토지를 타인의 이름으로 소유하는 것도 금지하자고 제안했다. 정광필의 제안은 다름 아닌 한 개인의 토지 소유 상한선을 법으로 정해 두는 한전제(限田制)였다. 한전제는 자연스럽게 토지 소유를 균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두 달이 지난 7월 29일 어전에서 때 신용개 역시 과거에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거듭 한전제의 시행을 주장했다. 시독관 김구, 사경(司經) 정응 등도 모두 지치(至治), 곧 이상적 정치의 실현을 위해 한전제의 시행이 불가피하다며 신용개의 편을 들었다.

1년이 지난 1519년(중종 14년) 7월 2일 기준(奇遵)은 “토지가 균등하지 않기 때문에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빈자는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어 유리(流離)·파산하게 되니, 제도가 공평하지 못한 것이 그 이유입니다”고 하면서 다시 균전제의 시행을 주장했다. 기준의 균전제에 대해 정순붕(鄭順朋)은 한전법으로 소수의 과도한 토지 소유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자, 기준은 근자에 토지 소유 상한선을 50결로 제한했지만 결국 실패했음을 상기시켰다. 이 50결은 1년 전 정광필과 신용개가 제안했던 토지 소유의 상한선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사실 50결은 엄청나게 넓은 땅이다. 그것은 결코 지켜질 수 없는 상한선이었던 것이다.

1519년 7월 2일의 논의를 끝으로 균전제 한전제 등 토지개혁에 관한 논의는 사라진다. 불과 4개월 뒤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1517·1518·1519년 3년 동안 균전제와 한전제의 시행을 주장한 사람들은 이른바 기묘사림(己卯士林)이라 불리는 개혁 사림 세력이었다. 중종반정 이후 권력 핵심부를 장악했던 이들의 개혁 프로그램에는 토지제도 개혁도 들어 있었던 것이다. 기묘사림의 토지와 노비의 소유 상한선, 곧 재산의 상한선을 법으로 정하자는 발상은 어찌 보면 대담하고 어찌 보면 무모하기조차 하다. 하지만 그 발상의 이면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극심한 빈부 격차가 생기고 그 결과 국가의 근간이 양민이 몰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깔려 있었다.

남곤(南袞) 심정(沈貞) 등 기득권 세력에 몰려 기묘사림이 실각한 이후 개혁을 표방하는 대규모 정치세력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기득권 세력을 잡도리하지 않으면 개혁은 실패하는 법이다. 사족들이야 특권과 토지를 소유하고 교양으로 치장한 채 인간답게 살았지만, 보통 백성의 삶은 그와 정반대 편에 놓여 있었다. 오늘날이라고 무어 다를 것이 있을까?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직무정지 새마을금고 이사장, 여전히 경영 관여
  2. 2경정 승진자도 전국 교류…경위 이하 5년씩 부서순환 추진
  3. 3지광 70억 있다면서…세금도 34억 10여 년 체납
  4. 4[근교산&그너머] <1484> 통영 학림도 망산
  5. 5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6. 6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7. 7‘가덕 증액 문서화’ 쳇바퀴…우선시공분 내달초 착공 희박(종합)
  8. 8아직 관객 많은 ‘오디세이’인데…아이맥스관에서 내린 사정
  9. 9신임 부산시 행정부시장에 김성기 행안부 인사기획관
  10. 10후배 경찰 신체 ‘덥석’…파출소 팀장 추행 혐의 피소
  1. 1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2. 2대한항공 말흐리기…실체없는 통합LCC 부산 허브
  3. 3[뉴스 분석] 종교인·언론사주가 국회 권위 훼손…도덕성 논란까지
  4. 4부울경 광역의회 협력강화 선언 “미래산업 함께 육성”
  5. 5李 대통령 “국민 생명·안전 지키기가 최우선”
  6. 6‘가상자산 과세 유예’ 결론 못낸 당정
  7. 7李 대통령 지지율 2%p 오른 46%…조희대 탄핵 반대 45%
  8. 8여야 ‘조희대 국조’ 두고 공방 격화
  9. 9밤샘농성 장동혁 "피의자 선관위가 새벽 4시에 투표용지 가져가"
  10. 10북한 ,‘탄도미사일 10여발’ 무력시위
  1. 1지광 70억 있다면서…세금도 34억 10여 년 체납
  2. 2‘가덕 증액 문서화’ 쳇바퀴…우선시공분 내달초 착공 희박(종합)
  3. 3퇴직금 2028년부터 사외적립…체불 예방
  4. 4부산시 “부산에 글로벌 AI 허브 유치하겠다”
  5. 5미래에셋·대신증권·빗썸도 뚫렸다(종합)
  6. 6사실상 금융업 전체가 다 털릴 판…靑, 긴급 대응회의(종합)
  7. 7'부캉이 오기 전' 부산 2분기 인구감소지역 체류인구 5% 증가
  8. 8첫 100조 분기매출 하닉 “100조 주주환원 하겠다”(종합)
  9. 9전용터미널·화주 인센티브 등 북극항로 상업운항 지원 요구
  10. 10부산과학기술협의회·CTO평의회 역량 확대
  1. 1직무정지 새마을금고 이사장, 여전히 경영 관여
  2. 2경정 승진자도 전국 교류…경위 이하 5년씩 부서순환 추진
  3. 3신임 부산시 행정부시장에 김성기 행안부 인사기획관
  4. 4후배 경찰 신체 ‘덥석’…파출소 팀장 추행 혐의 피소
  5. 5영업중단 이어 단전 위기…피가 마르는 홈플러스 입점업체들
  6. 6아울렛서 만나는 김해 도자기
  7. 7부경대 5108명 정보유출…위탁보안 비상
  8. 8“일부 수사 강압·부실” 부산변회, 권한 커진 경찰 첫 평가
  9. 9김해 어르신 생활 불편 해결해 드립니다
  10. 10“공장화재 대원 고립됐다” 실전같은 훈련
  1. 1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2. 2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3. 3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4. 4경남 생활체육 대축전 30일 개막…3일간 31개 종목 열전
  5. 5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6. 6‘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7. 7‘은퇴 기로’ 손아섭, 2년 만에 NC로…3000고지 향한 행진 계속
  8. 8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9. 9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10. 10김해FC, 제6대 사령탑에 설기현 감독 선임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부산 관광, 마냥 좋기만 할까
기고 [전체보기]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지긋지긋한 론스타
어떤 ‘최장수’ 기록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79년 정론 국제신문 정상화 요구 들불처럼 번진다
노후 원전 사용연장 안전에 일말의 의심 남지않게
세상읽기 [전체보기]
반복된 일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법
한국 경제 떠받치는 중장년, 이제 다시 봐야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