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한국갤럽이 재미있는 자료를 내놨다. 이 기관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이란 주제로 조사를 했다. 결과는 종합편성채널인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가 지상파를 물리치고 처음으로 1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문화 평론가들은 외진 산속 또는 무인도 등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으로 분석했다. 세상사에 찌들고 지친 중년 세대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위안을 삼고 있다는 풀이도 등장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해당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50대 이상 남성의 14%가 ‘나는 자연인이다’를 가장 좋아한다고 답했다.
개인적으로도 이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편이다. 그래서 이런 해석에 선뜻 동의한다. 50대에 접어든 이들 가운데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깊은 산속에서 내 마음대로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터다. 물론 전화와 전기, 컴퓨터조차 없는 ‘원시시대’와 같은 자연에서의 삶을 어느 정도까지 감내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자연인’처럼 살아 봤으면 하는 마음이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조금씩이나마 들기는 했다. 근데 요즘 와서는 그런 욕구가 더 심해지는 듯하다. 우리 사회의 돌아가는 모양새가 하도 요지경이어서다. 워낙 비상식적인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지니 중심잡기가 힘들다. 세상사에 대한 피로도가 계속 쌓일 수밖에 없다.
사람 사는 사회야 원래 그런 것이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근데 평범한 사람을 더 짜증나게 하는 것은 불안정한 정국이다. 눈을 그쪽으로 돌려 보자.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갈등은 2개월이 지나도록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둘로 갈라진 국론은 좀처럼 봉합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지난 주말에도 서울에서는 ‘검찰개혁’과 ‘조국 퇴진’을 외치는 이들이 세 다툼을 했다.
집회에 등장하는 용어도 살벌하다. 한쪽에서는 “국민과 헌법 위에 군림하고 국민의 고혈을 빨아먹은 검찰과 언론, 친일 잔당을 국민의 촛불로 태워버리자”고 외친다. 반대 편에서는 “현 정권은 민중 민주주의, 사회주의를 하려는 거짓의 세력이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수호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자”고 맞선다. 누구 하나가 완전히 몰락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국에까지 이르렀다.
가짜 뉴스는 또 어떤가. 현 정국과 관련된 확인되지도 않은 소식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진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뜬 긴급 뉴스를 검색해보면 충격적인 내용에 입이 떡 벌어진다. 사실이라면 세상이 뒤집어질 판이다. 그러나 대개 열에 아홉은 나중에 근거 없는 소문으로 드러난다. 여론몰이를 위한 특정 세력의 횡포다. 멋 모르고 따라가면 허탈감을 넘어 온몸의 진이 빠질 정도다.
인쇄 매체에 비해 영향력이 월등한 지상파 및 종편 채널 역시 조 장관 관련 프로그램을 막 쏟아낸다. 시청자 관심이 워낙 높으니 지상파에서는 지난 8월 이후 거의 모든 토론 프로그램이 이 사안을 다루고 있다. 종편에서는 토론뿐 아니라 심층 취재 기획물까지 앞다퉈 내놓는다. 하지만 내용이 대동소이한 까닭에 별다른 차별성은 없다. 게다가 진실 여부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카더라 뉴스’까지 심심치 않게 등장하니 보는 이들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조국 사태’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국회 역시 사실상 문만 열어놓은 상태다. 그나마 치러진 국정감사나 대정부 질의에서도 거의 모든 현안은 조 장관 옹호와 퇴진 공방으로 귀결된다. 의원 간 고성과 욕설이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것은 일상사다. 조금이라도 자당의 이익과 어긋나면 어김없이 비난이 쏟아진다. 국회 뉴스라면 미련없이 고개를 돌리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사태를 ‘국민의 다양한 의사 표출’이라 평가했다. 아주 틀린 견해는 아니다. 특정 사안에 100% 찬성이 나온다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존재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처럼 의견이 대립된다면 이는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경고나 다름없다.
청와대를 비롯한 여야 정치권에게 현 정국이 바람직한 것인지 묻고 싶다.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서둘러 수습에 나서야 한다. 당리당략을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마땅하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우리 사회가 특정 사안에 묻혀 언제까지 시시비비를 놓고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고 한다. 듣기 싫고 보기 싫다면 귀를 닫고 눈을 감으면 된다. 세상 소식과 절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그럴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라면 굳이 세상을 등지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세속에 초연한 ‘자연인’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