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 1712~1760)은 조선 시대 화단에서 여러 가지 면에서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그는 매우 뛰어난 그림 솜씨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심한 술버릇과 기이한 행동으로 많은 얘깃거리를 남겼다.
 |
| 최북의 ‘지두해도(指頭蟹圖)’ 선문대박물관 소장 |
한번은 금강산 ‘구룡연(九龍淵)’을 구경하는데, 술에 잔뜩 취해 울다 웃다가 “천하 명인 최북은 천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고 외치고는 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또 어느 날은 부자 한 명에게 산수화 주문을 받아 그려 주었더니 ‘산만 있고 물이 없다’며 불만을 표했다. 그러자 최북은 “산의 바깥은 다 물인데 그것도 모른다”며 소리치고, 그림 볼 자격이 없다며 빼앗아 찢어 버렸다고 한다.
또 한번은 지체 높은 양반이 그림을 주문하였는데, 술 좋아하는 최북이 약속을 맞추지 못하자 화가 난 양반이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최북은 “남이 나를 손대기 전에 내가 나를 손대겠다”며 자신의 눈 하나를 찔러 멀게 해 버렸다고 한다. 그의 괴팍한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이다.
그의 호 ‘호생관’은 ‘붓을 가지고 노는 사람’이란 뜻이니 ‘화가’를 의미한다. 당시 사람들은 괴팍한 그를 ‘미친 놈’이란 뜻의 ‘광생(狂生)’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최북’이라 부르지 않고, ‘최칠칠(崔七七)’이란 별명으로 불렀다. 이는 그의 이름자인 ‘북(北)’자를 파자(破字)를 하여 둘로 나누어 부른 것이다.
최북의 작품으로는 ‘표훈사도(表訓寺圖)’나 ‘공산무인수류화개(空山無人水流花開)’ 등 산수화 작품이 유명한데, 이 밖에도 좋은 화조화와 인물화도 전한다. 그의 빼어난 작품 중에 ‘지두해도(指頭蟹圖)’라는 작품이 전한다. ‘지두(指頭)’란 ‘붓 대신에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갈대 한 가지에 매달린 게 두 마리를 그렸는데, 손가락으로 그렸음에도 간결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다. 이 작품은 과거 급제와 관련이 있는 그림으로 통하는데, 게의 껍데기를 뜻하는 한자 ‘갑(甲)’이 과거 시험에서 장원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암수 한 마리가 더불어 있는 것은 부부의 금슬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다.
우측 아래에 있는 인장은 해방 후 수도경찰청장을 지낸 창랑(滄浪) 장택상(張澤相, 1893~1969)의 수장인이며, 왼쪽 아래의 특이한 인장은 정치인 동산(東山) 윤치영(尹致暎, 1898~1996)의 인장이다. 대개 좋은 작품은 큰손들의 손을 넘나드는 서화계의 옛 풍습을 잘 보여준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