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웬만한 도시는 대개 큰 강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강을 이용하면 이동이 편리한 데다 농사에 필요한 물이나 식수를 손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더스·황하 문명 등 세계 4대 문명이 모두 강을 끼고 태동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삼국시대 한강 유역을 두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피 튀는 싸움을 한 것도 강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지금도 여러 가지 면에서 강의 역할은 크다. 지역을 관통하는 강이 존재하는가에 따라 도시의 발전 속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공업도시인 울산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는 태화강이다. 이 강은 울산이 1960,1970년대 산업화와 맞물려 급성장을 했기에 역사가 일천하지 않느냐는 시각을 반박하는 데 유용한 역할을 한다. 학자들이 조사를 해 보니 태화강 주변에서는 청동기 유적이 무수히 확인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150개를 넘는 데다 주거지도 3500곳 이상이다. 우리나라에서 단위 면적당 청동기 유적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 태화강 유역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태화강이지만 1980년대 이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산업화 여파로 수질이 날로 악화되면서 ‘죽음의 강’ ‘×강’이란 오명까지 얻었다.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것이 예사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울산 출신 가수 윤수일은 ‘태화강 연가’라는 노래를 1990년대 초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물안개 피어나는 강변을 걸으며, 밀어를 속삭이던 그 날은 어디에, 철새들 먼 곳으로 날아가고…’라며 예전에 맑았던 태화강을 그리워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울산시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태화강 복원에 사활을 걸면서부터다.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시와 시민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2000년대 후반에는 수질이 1급수로 개선됐다. 연어가 회귀하기 시작했고 태화강을 따라 4㎞에 걸쳐 조성된 십리대숲에는 새 중에서 지능이 가장 높아 오염된 곳에는 가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까마귀가 매년 떼 지어 몰려 들었다.
여세를 몰아 올해 태화강은 순천만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 국가 정원으로 선정됐다. 시는 오는 18일 ‘시민이 품은 정원, 가을을 물들이다’란 주제로 공식 선포 행사를 갖는다. 태화강은 오폐수로 뒤덮였다 되살아난 흔치 않은 사례다. ‘죽음의 강’이라는 멍에가 다시는 씌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