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군을 찾는 이들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월출산이다. 우리나라 22개 국립공원 가운데 면적이 가장 작은 월출산국립공원. 그럼에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그만큼 특별하기 때문이다. 우선 넓은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은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수천만 년의 세월 동안 비와 바람에 깎이고 파여 만들어진 기암괴석은 절경을 넘어 신비롭다. 보는 각도를 조금만 바꿔도 표정이 달라지니 여행자는 애달아 환장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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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쫄깃한 갈비와 야들야들한 낙지가 조화를 이루는 ‘갈낙탕’. |
이 가을 영암군을 찾는 관광객을 환장하게 만드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갯벌을 터전으로 살아온 세발낙지다. 과거 영암군의 갯벌은 흙이 곱고 영양분이 풍부해 생태계의 보고로 유명했다. 지금도 영암 사람들은 영암 갯벌을 최고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1996년 영암군과 해남군 사이에 거대한 방조제가 건립되면서 갯벌이 사라졌다. 막대한 양의 농경지와 농업용수를 확보하는 대신 다양한 갯벌 생태계를 포기한 것이다.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는 과거 영산강의 지류가 마을까지 흘러 들어와 포구를 이루던 곳이다. 갯벌이 좋아 낙지 생산지로 명성이 자자했다. 간척사업 이후로 바닷물이 유입되지 않자 자연스럽게 낙지도 사라졌다. 하지만 낙지를 다루던 손맛과 그걸 즐기던 입맛은 여전히 건재했다. 간척사업 후에도 독천리 곳곳에는 낙지전문점이 옛 영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2009년부터 영암군은 열악한 지방재정에도 불구하고 거액을 들여 독천 오일장 주변을 정비하고 ‘낙지음식명소거리’를 조성했다. 지금은 이곳에 20여 곳의 낙지전문점이 모여 있다.
쓰러진 소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는 세발낙지는 살아서는 힘이 넘친다. 질척한 갯벌을 헤집고 살아온 강인한 생명력은 사람 입속에 들어가서도 꺾일 줄을 모른다. 먹어서 힘이 나기에 앞서 먹느라 안간힘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일단 익히면 낙지만큼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음식이 없다. 그 식감이 사뭇 관능적이다. 살았을 때와 익혔을 때의 극명한 대비를 구현하는 것. 낙지로 만든 음식의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관록 있는 독천 낙지마을의 음식점들은 그 포인트를 기막히게 잡아낸다.
지금은 비록 산지가 아니지만 낙지를 다루는 솜씨만큼은 여느 산지를 능가한다. 여러 음식 가운데 독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갈낙탕이다. 과거 독천리에는 함평, 장흥과 더불어 전남 3대 우시장이 있었다. 우시장과 낙지 포구. 갈비탕과 낙지의 이종교배는 이처럼 독천의 독특한 환경이 낳은 결과물이다. 갈비탕에 빠진 낙지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기름지고 묵직한 국물에 은근한 개운함이 더해져 밸런스를 맞추고, 쫄깃한 갈비의 육질과 야들야들한 낙지의 육질이 대비를 이뤄 씹는 재미까지 더한다. 지금은 전국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갈낙탕의 완성도는 독천이 단연 으뜸이다.
나는 독천리의 갈낙탕에서 낙동강의 재첩국을 본다. 음식의 운명은 사람이 결정한다. 음식을 만드는 솜씨와 그 음식을 즐길 줄 아는 입맛만 건재하다면, 낙동강 재첩의 부활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