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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광장과 달 /오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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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10-16 19:21:5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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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과 ‘광화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찬반을 놓고 두 달 넘게 둘로 갈라진 민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른바 ‘광장 정치’를 말한다. 서울 서초동에 모인 시민은 촛불을 들고 ‘조국 수호’ ‘검찰개혁’을 외쳤다. 이에 맞서 광화문 광장에서는 ‘조국 파면’ ‘문재인 정권 규탄’ 함성이 울려 퍼졌다.

지금으로부터 59년 전. 소설가 최인훈은 1960년 10월 ‘광장’을 발표했다.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암초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 ‘이명준’의 외로운 자기 성찰을 담았다. 이 작품 곳곳에 광장이 나온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난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한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 좌우 이념 대립으로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 광장이 6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광우병 파동,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조국 사태 같은 초대형 이슈가 터질 때마다 사라지지 않고 등장한다.

조국 장관이 지난 14일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을 다했다”며 사퇴했다. 여진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다. 검찰개혁의 절박함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를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 진영 간 이념 대결을 넘어 불공정한 경쟁, 반칙과 특권, 기득권층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통한 자녀 챙기기, 문화자본, ‘개천에서 용 나는’ 계층 이동의 단절, 세대 간 불평등, 진영 간 무(無)비판적 옹호와 편 가르기, 지식인의 말과 행동 불일치, ‘입(만 살아 있는) 진보’, 위선, 386세대의 민낯…. 사회과학 서적에 나오는 추상적 개념이 조 전 장관 가족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맞물려 시민의 피부 깊숙이 각인됐다. 우리 사회가 짧은 기간에 산업화를 통해 ‘압축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파생한 부작용으로도 볼 수 있다. 일종의 성장통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몇백 년에 걸쳐 이룬 산업화·근대화를 불과 몇십 년 만에 따라잡았으니 부작용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그만큼 사회 시스템이 성숙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시민의식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조국 사태는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고 정치권은 갈등을 수습하기보다 오히려 키웠다는 문제를 노출했지만 진보와 보수 진영에 모두 새 길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손가락이 아니라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자는 뜻이다. 보수와 진보 진영 내부에 균열이 생겼고, 분화와 진화를 통해 한층 성숙해져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이 주어졌다. 보수(保守)는 ‘지키는 보수’를 넘어 ‘진화하는 보수’로 보수(補修)해야 한다(박형준 권기돈 ‘보수의 재구성’). 진보 역시 평등과 정의를 말로만 외칠 게 아니라 어떻게 생활 정치로 구현할지 고민해야 한다. 서강대 이철승 교수는 신간 ‘불평의 세대-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를 통해 “청년 세대가 불행한 건 그 부모인 386세대가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양질의 일자리와 높은 임금,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세대 간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다. 386세대는 평등의 가치를 우리 사회에 전파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연공서열에 기반한 위계 문화를 체화하는 등 이중성을 보인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 조국 사태의 이면을 읽는다면 보수와 진보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지지층에 희망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게 성찰해야 할 때다. 그렇잖다면 당장 내년 4·15총선에서 유권자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다. 아울러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이쪽저쪽도 아닌 제삼지대, 중도가 설 자리도 필요하다. 최인훈 작가는 ‘회색인’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진보와 보수가 분화와 진화를 거듭하며 자기만의 색깔을 내서 민초의 다양한 삶을 달빛처럼 은은하게 비춰주길 기대해본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세상을 둘로 나눌 수 없으니까.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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