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인 독일인 친구 빈센트는 자국에 대한 반감이 무척 강하다. 역대 총리들의 계속된 사죄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와 전쟁 범죄의 청산 의지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순종 독일인으로 그럴진대 그가 한때 거주했던 일본에 대한 반감은 엄청나다. 아내가 한국인이어서인지 그는 일본 아베 정부에 대해 깊은 경멸감을 갖는 한편 한국과 연관된 모든 것을 자기 일인 양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한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빈센트. 그런 그가 나를 만나러 와서 서울 경기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어떤 민망함과 안타까움을 나는 충분히 읽는다. 뮌헨에 사는 한국 홍보대사인 양 온갖 분야에서 한국의 우수함 세련됨 첨단성을 찾아내고 칭송하는 그이지만 도저히 적응하지 못해 표정이 어두워지는 어떤 면. 그것은 이 땅 어디를 가나 발에 차이는 담배꽁초, 휴지, 일회용 컵 따위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10여개 국 중 하나이면서 넘쳐나는 쓰레기와 섞여 사는 한국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패셔너블한 옷차림의 멋진 남녀가 먹던 음식의 잔해를 어떻게 벤치에 그대로 두고 떠날 수 있는지, 보기 흉한 쓰레기들을 왜 아무도 줍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하는 것이 그의 표정에 쓰여 있다. 나는 그에게 늘 설명할 길 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언젠가 다소 느슨한 정치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이제부터 나의 정체성은 시인, 문화평론가가 아니라 애국자라고 선언했다. 좌중은 깔깔 웃었지만 내 나름은 진지했다. 스무 살 언저리에 어떤 여성을 뜨겁게 사랑했고 그후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러 그만한 강도로 사랑할 대상을 찾아낸 것이다. 뒤를 돌아 한국인이 걸어온 지난 100년의 역사를 탐색하고 현재 도달해 있는 위치를 헤아려 보면 나의 나라 한국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면이 너무 많았다. 그걸 육십 너머 이제야 깨닫다니! 애국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간 각종 방송과 강연장에서 쏟아낸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게 느껴지던지….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날마다 두 시간 집 근처 골목골목의 쓰레기를 줍는 일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애국이다. 이제 두 달이 넘어가는데 사정이 생긴 딱 이틀만 제외하고 하루도 쉬지 않았다.
출동시간은 항상 새벽 1시께. 어쩌다 방송에서 얼굴이 알려진 터라 낮시간에 나가 보니 깜짝깜짝 놀라는 거리의 반응이 너무 불편했다. 또 하나, 맨손을 사용하기로 했다. 과거 넝마주이가 쓰는 집게나 장갑 따위를 착용해 보니 효율성이 떨어졌다. 차라리 길바닥에 던져진 건 줍기라도 편하지 구멍마다 처박히고 풀숲마다 감춰놓은 쓰레기는 고분 발굴 같은 섬세한 노력이 드는 일이었다.
거리의 쓰레기 줍기가 선행이자 진실한 애국이 되려면 드러내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태가 너무도 심각하다. 왜 도처에 쓰레기통을 비치하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보았다. 아니 될 일이다. 1980년대처럼 거리마다 쓰레기통이 설치되면 그야말로 온 거리가 쓰레기장이 될 것이다. 먼저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말 것이며 어쩔 수없이 생긴 쓰레기는 스스로 챙겨가는 것이 옳다.
조국 사태로 난리가 난 석 달 동안, 한일 무역 갈등으로 준전시에 가까운 대결 구도가 펼쳐지는 동안 나의 관심은 온통 쓰레기에 쏠려 있었다. 쓰레기 수거 영역을 용강동 신수동으로 넓혀나갈지, 그러기 위한 시간과 체력 안배는 어떻게 할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어떻게 사태가 전개되든 한국은 갈등과 대립의 에너지를 선용해 왔으니까. 작금의 사태도 그러리라 믿고 나는 쓰레기를 줍는다. 어디 동지는 혹시 없을까. 이 빌어먹을 한국이 눈물 나게 고맙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 마음이 뜨거운 자가 어딘가에 있다면 밤에 나와서 거리를 닦자. 그중 기업 경영자, 법조인, 교수, 언론인, 연예인 같이 비교적 혜택받은 삶을 살아온 자들은 특히 더 봉투를 들고 밤거리를 나서자. 헉헉거리며 한 바퀴 휩쓸고 온 거리가 안방처럼 반질반질해져 있는 것을 맛볼 때의 그 기분! 언젠가 빈센트가 다시 서울을 찾아올 때 그가 사는 뮌헨 주택가 쉬트라세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을 꼭 보여주고 싶다.
시인·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