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 택시를 탔다.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차를 멈추고 운전기사님이 말을 건넨다. “올해는 이렇게 비가 자주 내려 농사하시는 분들이 힘들겠어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고 어딘가 모르게 말의 품위와 지적인 울림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화가 유쾌하게 이어졌다.
기사님은 공무원 생활을 오래 했고 정년이 되어 퇴임하고 택시를 한 지 6개월 된다고 했다. 연금으로 노후를 설계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활동하고 싶다고 하였다. 택시에서 내렸다. 선물이라도 받은 듯 기분이 좋았다. 몇 마디 말로 사람을 평가하기 어렵겠지만 그의 말과 태도에서 신사다운 품격과 배려심을 충분히 느꼈다. 삶 속에서 이렇게 빛나는 순간이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나 자신부터 배려를 실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신사답고, 남성다움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예를 들자면 몇 년 전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출연했던 남자 배우들을 말할 수 있겠다. 세련되고 깔끔한 정장이 잘 어울렸던 주인공들이었다. 마지막 회에서 주인공 ‘도진’(장동건 분)이 한 독백을 되돌려 본다. “소년은 철들지 않는다. 다만 나이 들 뿐이다. 하지만 나이 든 소년들은 안다. 다른 초침으로 흐르고, 다른 색으로 빛나는 방법을.” 남자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소년이란 말이 지닌 느낌처럼 남성 본래가 가진 순수함, 모험적 도전적 삶의 태도를 잃지 말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동시에 빛나는 노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국제신문이 줄곧 게재하는 기획물 ‘신중년이 뛴다’를 즐겨 읽는다. 먼저 문제점부터 살펴보았다. 부산의 신중년(50∼69세) 인구가 늘면서 지역 성장 동력이 한풀 꺾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연금을 포함한 대부분 복지혜택이 노년층과 청년층에 집중된 탓에 신중년 세대는 은퇴 이후 삶을 제대로 준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은퇴한 신중년이 자연스럽게 사회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신중년을 부르는 다양한 명칭도 있다. 5060 세대, 샌드위치 세대, 꽃중년 등등. ’샌드위치 세대’란 말도 그리 달갑지 않다. 고령의 부모를 돌봐야 하는 데다, 청년실업률이 높아 장성한 자녀까지 뒷바라지해야 해야 해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자식과 부모를 동시에 부양하는 것은 물론 ‘황혼 육아’까지 떠맡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각도로 바라보자. 각자 하기에 따라 부정적 요소를 긍정적 상황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꾸미는 신중년이 행복하다’라는 구호가 그것이다. 건강 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이가 들수록 의상을 비롯한 헤어스타일, 얼굴과 몸 관리를 절대로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필자의 아버님도 노후에 외모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매일 산에 다녀오신 후에 목욕하시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차려 입으시고 향수로 마무리하셨다. 연구에 따르면 신중년의 외모 만족도는 개인 행복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신중년이 여가활동을 하면서 타인과 인간관계를 맺는 데 도움을 주고, 결국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빛바랜 노년을 보내는 이들을, 그것도 공개된 매체를 통해 목격할 수 있었다.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선도해야 할 국가 최고 위치에 있는 몇몇 공직자를 말함이다. 알려진 대로 청문회장에서 서류를 찢어발겨 날려버리는 국회의원이 있는가 하면 국감의 현장에서 무슨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불량배들이 싸움할 때나 쓰는 말을 동료 의원들에게 내뱉기도 했다. 비신사적인 언행을 넘어 망언이나 추태에 더 가까웠다. 때로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의 망언보다 더 심각한 지경에 이른다. 저들이 과연 우리 국민이 선택한 한 나라 최고위 공직자들인가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양복을 걸치고 넥타이만 매고 있었지 신사다운 품격과 품위를 눈곱만치도 찾을 수 없었다. 제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