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독에서 인심 난다”라는 말이 있다. 살림이 넉넉해야 남에게 인심을 쓰고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이다. 세상사가 그렇게만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빈부 격차,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줄어들 텐데. 하지만 한도 끝도 없는 게 사람의 욕심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요구하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현상을 그냥 두면 자유는 방임이 되고, 불평등 구조는 더 심해진다. 그 차이가 클수록 삐걱거리는 소리는 더 커진다.
그래서 나라의 역할이 필요하다. 나라가 좀 있는 사람에게 인심을 쓰도록 강요해야 사회 안전망은 만들어진다. 이는 규제나 통제를 통해서 가능하다. “자본주의 경제는 규제가 없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며, 우리에게는 착한 행동을 강요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선의를 갖고 있는 게 아니며 모두가 관대하고 공익 정신을 갖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을 제한할 규칙이 있어야 한다.”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로버트 실러 교수의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30대 중반에 겪어야 했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의 시련이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체감케 했다. 가진 게 몸뚱어리밖에 없는 이에게 신자유주의는 정글이나 마찬가지다.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그런데 당시 사회 안전망은 부실했다. 기회마저 평등하지 않으니 박탈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사회적 불만으로 이어지고 사회 경쟁력은 떨어진다. 부의 편차는 이래서 위험하다.
이와 관련한 충격적인 통계(글로벌투자은행인 크레디트 스위스의 ‘2019년 글로벌 웰스 보고서’)가 최근 나왔다. 전 세계 성인의 상위 0.9%가 전 세계 부의 절반에 가까운 43.9%(지난 6월 말 기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부의 독점이다. 반면 전 세계의 하위 50%가 보유한 자산은 전체의 1%를 밑돌았다. 하위 90%가 보유한 자산은 전체의 18%에 불과했다. 그나마 상위 1%가 보유한 자산 비중이 2000년 47%에서 올해 45%로 하락한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판이다.
이 보고서의 집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상위 1%가 소유한 부의 비중은 전체 자산의 30%였다. 세계적인 기준으로는 아직 우리나라 부의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낮은 셈이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분명한 것은 부의 불평등이 더 위험 수위로 치닫기 전에 대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해야 할 몫이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